by
이숲오 eSOOPo
Apr 23. 2023
브런치는 아침과 점심 사이에 먹는 식사다.
시쳇말로 아점이다.
왜 카카오는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의 이름을 아점 이야기(브런치 스토리)라고 명명했을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오 전까지 글쓰기를 습관화하라고 그리 지었을까.
그것도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겠지만 방점은 아침에서 점심까지가 아닌 '사이'에 있다.
사이는 틈이자 경계이다.
그곳은 진공의 상태이자 무한한 가능성의 불모지다.
아무도 발 디딘 적 없는 행성이고 푸른 바다다.
겉으로는 자유로우나 막상 들여다보면 자유로 가는 길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글은 각오나 막연한 생각만으로 갈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글을 '잘 다듬은 말'이라고 여긴다면 글의 성질을 아직 오해하는 꼴이다.
글은 생각의 다양한 도구로 나만의 길을 내는 것과 같다. 그래서 글은 길과 모양새가 닮은꼴이다.
글을 쓰다가 길을 잃을 때와 유사한 조난의 기분이 드는 것도 글로 길을 나선 것과 다르지 않아서다.
나침반과 손전등이 없으면 막막한 길로 나서길 꺼려하기에 누구도 글자를 알면서도 글을 쓰지 않는다.
길 떠나는 자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할 각오를 배낭에 넣고 떠난다.
독은 독으로 풀듯이 길은 길에서 올바른 물음이 된다.
길은 장소와 장소 사이에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이 중에서 가장 넓다.
가끔 긴 사이를 공간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사이를 부유하는 것을 여행이라고 부른다.
사이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장소이기에 설레고 긴장된다.
브런치에서 여행이야기, 인생이야기, 결혼/이혼이야기가 많은 것은 글쓰기가 사이와 길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이에는 무수한 장애물들이 있다.
문, 창, 벽, 턱.
사이로 가는 걸 돕기도 하고 막기도 하고 멈추게도 하는 것들이다.
글쓰기에서의 문창벽턱은 괜히 서랍정리하기부터 코딱지파기, 손톱깎이, 차 마시기, 멍하니 커서 바라보기 등이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요령만 안다면 그것들은 사이로 들어가는 것을 각자의 나름대로 환대하는 방식이란 걸 알게 될 것이다.
글쓰기는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 고독한 향연이다.
그러니 이 정도의 사전 세리머니 정도는 감당해야 즐길 자격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