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벤치가 사라지면서 카페가 늘어났다.
동네마다 공원이 사라지면서 편의점이 생겨났다.
쉬기 위해서 어디론가 들어가야 하고 무언가를 구매해야 한다.
지속적인 소비는 의도치 않게 커피애호가들을 만들고 혀끝을 더욱 정교하게 길들여갔다.
카페가 많아서 커피소비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가볍게 머물러 대화를 나눌 공간이 제한적이었기에 그리 된 것이다.
산이 거기에 있어서 산을 올라갔다는 어느 등반가의 말은 이 경우에도 어울리게 통한다.
길을 가다 갑작스레 내린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다이소에서 한아름 물건을 사 온 적이 있다.
구매의사가 없이 들어갔는데 상품들을 보자 하나같이 필요해 보인다.
언제 멈출지도 모르는 사무실 시계의 건전지가 걱정되어 집어든다.
천년을 쓰고도 남을 필기구를 가지고 있으면서 색상과 디자인에 혹해 집어든다.
손톱깎이가 있으면서 발톱깎이가 무언가 특별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집어든다.
인테리어에는 젬뱅이면서 비가 그치면 꾸며보겠다고 가짜 식물들과 도구들을 한 아름 집어든다.
쇼핑의 원인이 비가 내려서라니 어쩜 좋은가.
소비는 냄새 같아서 감각에 노출되는 순간 소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후각이 그렇듯이 쉽게 반응하고 쉬 지쳐 시들해진다.
소비할수록 결핍은 해소되지 않고 잠시 휘발되었다가 다시 피어오른다.
이 모든 소비의 근원은 공간의 빈곤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가만히 쉬면서 휴식하는 공간의 부재는 그럴듯한 인테리어와 요란한 음료 이름으로 공간을 돈을 내고 빌리도록 유인한다.
그 용도는 각자 개인적이라 카페에서 공부하고 보험을 팔고 자동차를 계약하는 도서관도 아니고 사무실도 아닌 모호한 쓰임새로 다양하다.
예전에는 공간을 넓게 소유하는 자가 주목받았으나 이제는 공간을 많이 알고 있는 자가 강력하다.
적절한 시간에 적당한 장소를 매칭하는 것이 능력인 시대가 된 것이다.
꼭 어떤 목적이 아니더라도 남들보다 힙하면서 독특한 장소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하게 보이는 요즘이다.
그런데 그 장소라고 하는 것이 하나같이 비용을 지출해야 잠시라도 머무를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
예전처럼 주인이 없는 혹은 모두가 주인인 공공의 공간들이 그립다.
작은 동네도서관이라든가 근린공원이라든가 동네 평상, 벤치들이 적어도 가까운 거리에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