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Apr 25. 2023
캥거루, 하마, 낙타, 기린, 펭귄...
눈으로 본 적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안다고 차마 말할 수 있을까.
촉각 하지 않은 것들은 진정한 앎의 관계 안에 편입되지 못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잘 모르는 것들에게 다정한 느낌이 든다.
왜 친숙한 걸까.
말 못 하는 동물들이어서 그럴까 해서 호모 사피엔스까지 범주를 확장해 본다.
얼마 전 우연히 골목에서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는,
마르고 키 큰 청년이 홀로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에 대해 마시는 방법밖에 모르는-오른손으로 마시거나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마시는 식의-나에게 친절하게 커피의 종류와 특징을 알려주며 커피를 내려주었다.
한 잔을 주문했는데 종류마다 조금씩 맛을 보게 해주는 친절에 하마터면 팁으로 내 간과 쓸개를 떼어주고 싶을 정도로 감동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 내용은 사라져도 그 인상은 흰 셔츠에 묻은 아메리카노 자국처럼 남아 있었다.
그의 이름조차도 모르는 미지의 한 인간이 오랫동안 다정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남다른 친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은 것이 있지 않을까.
곁에 없어도 친근하고 익숙한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잘 알지 못해도 친숙한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오히려 모른다라는 점이 그리 느끼게 하는 건 아닐까.
앞으로 그 다정한 느낌의 청년을 애써 모른 채 잊고 찾지 않는 것이 영원한 다정함을 박제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왜 자꾸 알아갈수록 다정함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일까.
무슨 청개구리가 된 심보일까.
익숙해진다는 것이 이토록 마음을 닳게 하는 것일까.
다정함은 그야말로 정이 많아지는 상태인데 관계가 결핍인 대상에 대해 더 각별한 것은 참 놀랍고 이상하다.
어쩌면 정이라는 것이 능동의 감정상태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정을 발산하는 자의 태도에 입각해 다정함의 자기장이 형성될 터인데 대상이 익숙하거나 이미 충분한 정을 제공받은 자가 있다면 다소 어색한 노릇이어서라고 제단 해보지만 이도 반박의 여지가 다분하다.
천성이나 성격이 변수이니 말이다.
아무튼 남극에 사는 펭귄에 대한 다정한 마음이 불쑥 들었던 하루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그들의 삶터가 좁아진다는데...
저 스스로 살기가 점점 각팍해져도 지구인들의 미지에 대한 다정함은 여전해서 다행이다.
오늘은 정작 펭귄들은 영문도 모르는 세계 펭귄의 날이다.
그래도 펭귄은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