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인 올리버 색스의 '의식의 강'을 읽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의 의식의 기원을 다루고 신경증과 관련 있는 자료들, 다윈이나 프로이트 같은 학자들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세세한 기록들을 읽으며 지적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눈물도 찔끔거리면서요.
그가 안암이 간으로 전이된 합병증으로 죽기 2주 전 이 '의식의 강' 원고를 이 책의 서문을 쓴 세 사람의 동료에게 출판에 대한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82세였습니다. 방대한 자료를 꼼꼼하게 모아 귀한 기록을 남긴 저술가이기도 합니다.
그가 죽기 바로 전까지 심혈을 기울였던 저술 활동들은 다윈이 관심을 보이던 식물과 하등 동물의 정신세계, 신경학자 프로이트의 의외의 활동 이야기, 오류로 범벅이 가능한 기억과 청각적 환상, 모방과 창조에 관한 이야기들로 무척 매혹적입니다. 그들을 읽으며 저의 뇌신경 가닥들이 뚝뚝 꺾여 나가는 듯한 충격을 느낍니다. 그의 개인적인 경험 하나하나까지 제게 영감을 줍니다.
나는 글을 쓸 때 때때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저절로 체계가 잡히고, 즉석에서 적절한 단어들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나의 성격과 신경증 neurosis을 상당 부분 우회하거나 초월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 상태의 나는 내가 아닌 not me 동시에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 innermost part이며, 최상의 부분 the best part임에 틀림없다.
- Oliver Sacks, 의식의 강(The River of Consciousness) p.161-62
이 부분을 읽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제가 가진 온갖 성격적인 결함들과 독한 신경증적 기질들을 잊을 때가 제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때만큼은 저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보이지 않는 긴 막대기로 제게 깊이 가라앉은 찌꺼기들을 휘저어 퍼올리며 정화되는 느낌을 갖습니다. 부끄러움도 퍼올립니다. 사소한 감정과 감상에 빠져 시간을 낭비했던 순간들을 회한(悔恨)합니다.
현실에서 보이는 나를 포함하는 '내가 아닌 다른 나, ' '가장 내밀하고 최상인 나' 그런 나를 탐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헤밍웨이가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했다는 어느 작가님이 쓴 글을 읽으며 가슴 철렁합니다. 그래도 가장 내밀한 최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올리버 색스의 글을 읽고, 헤밍웨이의 메시지를 전해 들으며 끓는 피를 장착합니다. 이렇게 글을 읽으며 또 글을 쓰면서 조금씩 제 삶의 각도가 바뀌는 황홀한 경험을 하는 중입니다.
사진 출처 from 올리버 색스의 부고 by The Guardian, 20150830
#라라크루 (1-6) #라라라라이팅 - 제 삶을 바꾸고 있는 올리버 색스를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