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ude Descending a Staircase)'는 의식의 연속성이나 시지각의 메커니즘 또는 장애와 연결하여 분석하기도 한다.
정지되어 있는 사진이 운동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도전한 뒤샹이 이 그림을 그렸을 때가 25살이라고 한다. 그는 이 그림을 '운동의 정지화상(Static image of movement)이라 불렀다. (p.181, 의식의 강 by 올리버 색스)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그림을 책의 저자가 이끌어주는 대로 따라가 의식을 고찰해 보고 아하! 순간을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의식은 연속적일까 불연속적일까. 마치 소리에 대해 생각해 보듯이 의식을 대어 본다.
편두통 환자들은 종종 특이한 시각장애를 겪는다. 어떤 사람은 편두통 전조증상으로 눈앞이 부옇게 흐려지면서 머릿속이 몽롱해진다. 그때 거울을 보면 자신의 모습 중 어딘가가 지워져서 형체가 없다.
시각 장애의 양상은 다양하다. 요즘은 20대에도 시각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인간은 안구 뒤쪽 신경다발이 뭉쳐 나가는 곳에는 시신경이 없다. 그래서 맹점이라는 걸 경험한다. 눈앞에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시야에서 사라지는 현상이다. 그 맹점을 경험할 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경험하는 찰나는 연속적일까 불연속적일까.
책을 읽고 잔상을 치우지 못해 몽롱하게 보내던 중이었다. 추천받은 영화를 보다가 다시 뒤샹을 만났다. 회화에서의 뒤샹의 영향을 흔쾌히 인정하는 예술가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 그 있는 그대로를 보라 한다.
눈을 피하지 말고 현실을, 모든 일관된 눈앞의 현상을 직시하라 한다. 일관되고 진실한 것들, 일관되고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들... 절대 눈 돌리지마. 외면하지 마.
Never Look Away
자신만이 가장 진실한 자신을 만난다.
책에서 이어진 뒤샹을 영화에서 다시 만나며 과거가 현재로 들어와 재구조화되는 이런 경험은 마치 경조증(hypomania) 속에서 무한한 긍정과 환희를 느끼는 순간이다. 그런 희박한 순간들을 길게 이어가려는 고통을 기꺼이 따르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눈앞에 태산같이 할 일을 쌓아두고 왜 자꾸 딴짓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벼락치기의 예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 1912년 마르셀 뒤샹의 그림 from Wikipedia
의식의 강 (2018) by 올리버 색스. 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