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Mar 16. 2024

당신의 첫날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응원할게요.

쥴리가 경찰관으로 첫 근무하는 날 강도에게 아이스크림을 줬대요!

https://collins.co.uk/products/9780007186662?variant=41427297828975

나의 영어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고 얘기하는 원서 First Day에는 다양한 첫날의 실수가 가득하다. 괜찮아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시작의 실수는 실수가 아니에요. 방향을 가리키는 거예요. 응원할게요.




평생 처음인 것을 시도했다. 나의 처음이기도 했지만 그의 처음인 것도 같았다. 예약할 때부터 그랬다.


샵: 어떻게 해드릴까요?

나: 제가 처음이라서요. 추천해 주세요.

샵: (한참 지나) 네. 그럼 @#$%^&*로 할게요.


나는 신체 부위 중에서 케라틴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는 관대한 편이다. 갑자기 문득 재미있는 상상을 하고 샵에 가면 내가 괜찮다는데도 내 말 대로 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괜찮다.


어떤 것을 처음 할 때는 그 기쁨과 설렘도 있지만 불안과 공포도 만만치 않다. 가르칠 자료를 준비하거나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에는 설렘이 대부분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맞서야 하는 처음은 공포이기도 하다.


그래서 뭔가 상상을 관대하게 실현하고 싶을 때 꼭 '제가 처음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상대는 조금 편안하게 나를 대할 준비를 한다. 나의 처음은 나를 대하는 그의 처음인 경우가 여러 번이었다. 그의 눈빛이나 손길을 보면 오늘 처음 하는 거구나 단박에 알 수 있다.


대범한 듯 친절하게 하다 긴 빗을 떨어뜨리고 멋쩍게 줍거나, 양 끝 길이를 재보는 척 잡아당기며 자꾸 한쪽씩 더 자르다가 결국 얼토당토않은 다른 길이로 마무리를 할 때도 있다. 웃으며 괜찮다 한다. 계속 자라는데요, 뭐.


지난 일주일간 너덜해지고 찢어져 흩날렸던 내 마음처럼 되어버린 케라틴을 정비하기로 했다. 눈은 안과에 뇌는 신경과에 뼈는 정형외과에 가니 이름 따라 그곳에 갔다. 화학약품 냄새에 눈이 쓰라린 것만 빼면 컬러풀 판타지에 가슴 뛰는 곳이었다.


따뜻하게 손을 덥석 잡아 준 처음도 낯설긴 했지만 견딜만한 순간이었다. 수습생과 장인이 나의 한쪽씩 맡더라. 수습생의 불안한 떨림이 끊임없이 전해오고, 장인의 노련한 수다에 끄덕이며 대꾸했다. 수습생이 장인에게 물어보고 길이를 대보고 나의 눈치를 본다. 나는 조용히 진심으로 앉아있으면 된다.


한 차례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고통에 '아~악!' 소리칠 뻔했지만 수습생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예쁘네요.' 웃고 나서 가끔씩 '예술이군요, ' '신비로워요, ' 그랬다. 그런데 정말 신비로운 세상이었다. 장인의 웃음과 수다도 진심으로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양쪽이 다르게 고쳐진 희한하고 기괴한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나 같이 강박적인 사람이 이 다름을 참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테지만 나는 수습생의 첫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고마워요.


그들이 추천하는 트렌드를 얼마간 즐기기로 했다. 그 얼마간이 어느 정도 일지는 모르겠다. 일단 변덕스러운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