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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r 24. 2024

메이 디셈버

[영화] 내면을 휘젓는 눈 [no 스포일러는 없다]

MAY DECEMBER*,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 어쩌면 '공익 영화'로도 규정 가능한 영화다. 비밀 요원 같은 조직력을 지닌 인기 배우,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에 의해 구원되는 영혼, 실체가 드러나는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마치 선물인양 상자 하나를 들고 경쾌하게, 하지만 호기심과 경계가 가득한 표정으로 그레이시(줄리안 무어)와 마주한 엘리자베스, 그레이시에게 전해준 께름칙한 배달 상자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다. 매혹적인 전사, 엘리자베스가 진실을 향해 들어가는 초입부터 이미 실화를 사회적인 부정성으로 고정하고 있다. 


23살 차이로 36살의 그레이시와 13살의 조(챨스 멜톤)가 만나 23여 년간의 가정을 이뤄 생긴 3명의 아이들, 하나는 성인, 쌍둥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성인이 되는 중이다. 조의 36살과 같은 엘리자베스의 36살이 오버랩되면서 그녀의 미션이 시작된다. 


3이라는 숫자들이 겹쳐 혼란스럽다. '그레이시, 조, 엘리자베스, ' 그리고 아버지인 조보다 더 정상으로 보이는 '세 아이들, ' 정신의 나이가 멈춰버린 조의 나약하고 초라한 갈망인 '타인과의 허무한 문자메시지, 나비로의 애벌레 우화 과정, 그리고 몽정마저 사랑이라 할 것 같은 어리숙함'까지 풀어야 할 보따리는 세 개들이 세 세트가 되었다.


그레이시에게 조는 인생의 주연도 조연도 아니고 장식용 바비큐 집게 정도다. 소시지를 굽고 있는 집게가 아니라 그냥 언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니 주방 구석에 걸어 둔 바비큐용 잉여 집게다. 


엘리자베스를 통해 그간 조가 걸려있었던 차가운 벽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 순진해빠진 네모난 지방덩어리 등짝을 보이며 짧게 배설하고 마는 신음은 쓸모없는 그의 정체성이다. '조! 너 행복하니? 이게 삶이야?' 서서히 자신을 던져 조 안에 잠재해 있던 '진실의 갈망하는 조'를 꺼내려하는 엘리자베스다. 


그레이시의 균열을 채우는 허영에 농락당한 가여운 시간과 영혼, 조, 앞을 똑바로 봐야 해.


S.     E.     X.     ㅆ.     ㅔ.     ㄱ.     ㅆ.     ㅡ.     

섹.  스.  만.   으.   론.   해.   체.   될.   뿐.   이.   야.


23년간의 가스라이팅이 그레이시의 탐욕 안에 숨어있었다는 걸, 아이들의 졸업식에서 조가 드디어 눈물로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그래 지금이야. 36살, 이제 네 차례야. 그레이시의 36살을 살고 싶니? 아니면 너, 바로 너! '조'의 36살을 살고 싶니? 이제는 네가 정할 차례지. 조를 향한 엘리자베스의 미션은 끝났다.


'무슨 사랑은... 이게 어른이 하는거야.'


그레이시를 연기해야 하는 엘리자베스, 그레이시의 진실을 알아내야 하는 그녀는 그녀만의 연기와 심문과 공감으로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가라앉았던 껄끄러운 증거들을 수집한다. 그레이시의 불안은 곳곳에 눈빛과 목소리의 짜증과 긴장, 눈물로 드러난다. 


마치 비밀 요원 같은 날카로운 직감과 증거들, 연기를 예술로 치닫아 올린 마지막 장면의 긴장과 컷이 반복될 때마다 유혹의 강도를 높여가는 엘리자베스를 보며 그레이시를 향한 통쾌한 복수가 시작되었구나 생각했다. 


뱀이라니. 어깨를 까발린 흐트러진 천박한 몸짓과 눈빛의 그레이시를 연기하는 엘리자베스, 엉거주춤 홀리듯 대답하며 홍등가 뒷방으로 따라 들어가는 소년은 중학교 1학년, 13살 아이였다. 성장하도록 지켜봐 주어야 할 그 예민한 시기를 도둑질해다 평생을 재단해 온 그레이시의 연극에 신물이 났다. 


그레이시는 극적이고 변덕스러운 연기성 성격장애를 가진 가스라이팅의 고수다. 딸의 졸업 파티 드레스를 기어코 자신의 언어로 재단하며 딸아이의 바람과 기쁨 따위는 마음 깊이 가라앉게 만든다. 소름 끼쳤다. 


조가 깨달음을 확인하고자 그녀에게 했던 처절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네가 먼저 유혹했잖아. 누구 책임이었지? 누구 책임이었어?' 끊임없이 '네 책임이잖아'라고 계속 몰아붙이는 데서 공포를 느꼈다. 


아이들의 졸업식, 엘리자베스가 진실에 가까워진 것을 감지한 그레이시는 그녀를 혼란시키고자 하지만, 이미 증거를 가진 엘리자베스는 확신하게 된다. 그레이시의 인생은 불안한 가스라이팅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것을. 누구든 곁에 있으면 희생자가 된다는 것을. 아이들은 떠날 것이고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시작된 영화 촬영, 그레이시의 뱀과 함께 그레이시가 태워버리라 했던 조에게 준 소름 끼치는 편지가 연기될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학생들 앞에서 얘기했던 '아주 복잡한 도덕적인 회색의 구역들(the very complex moral gray areas)'이 진실의 수면으로 오르게 될 것이다.


더 철저할 36살의 그레이시, 그녀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가여운 36살의 조가 매혹적으로 진실을 풀어갈 36살의 엘리자베스 앞에서 그토록 숨어 갈망하던 자유와 성장을 향해 나비가 되어 날아가기를 바란다.


[공익 광고] 폭풍 같은 안과 밖의 변화를 겪는 아이들은 스스로 우화**하도록 그대로 두어야 한다.



*MAY DECEMBER - 나이 차이가 많은 커플이라는 의미

**우화(emergence) - 애벌레에서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과정

사진 출처 - IMDB (Internet Movie Datab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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