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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24. 2024

싸구려 취향

0651

가끔씩 나의 싸구려 취향을 경멸한다.


일상의 무료함을 떨치고자 떠난 작은 여행지에서 동네에도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찾는다.


익숙한 실내장식이 되어 있고 틀에 박힌 매뉴얼 응대를 받으며 빈틈없는 맛의 통일감을 기대하며 불편한 의자를 향해 자발적 서빙을 하며 편안해하는 나의 값싼 취향을 마주 할 때마다 실망스럽다.


낯선 곳에서 낯익은 체험을 하는 것이 때로는 안정감을 줄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부터 열심히 달아나는 것이 여행의 진미인데 참 맛을 걷어찬 꼴이니 그야말로 취향의 빈곤이 아닐 수 없다.


취향에 귀천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나 스스로 취향을 다루는 모습에서 그리 느낀다는 것이다.


취향은 욕구가 기우는 방향이다.


그 방향이 줄곧 예측이 가능할 때 싸구려스럽다.



'이것은 이러할 것이다'라는 상술에서 변수가 아닌 상수로 존재할 때 나의 취향은 B급이 된 기분이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남이 나의 취향을 장악하다니 이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나의 취향이 값싼 유혹에 놀아나다니 짜증이 난다.


취향은 무릇 언어에서 더 진하게 묻어난다.


대화 중에 시쳇말이 자주 오르내리면 취향의 감수성을 의심케 한다.


겉으로는 개성이 넘치는데 내면으로는 몰개성이 넘쳐 보인다.


글쓰기에서는 얼마나 자주 나의 싸구려 취향이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는지 휘발되지 않는 문장들을 볼 때마다 아찔하다.


적어도 남이 이미 쓴 비유나 표현을 피하거나 어떤 소재나 주제를 다룰 때에도 최대한 뻔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겨우 내 싸구려 취향이 가려진다.


나의 취향이 타인의 취향과 비슷한 내음이 날수록 진부해진다.


진부해지는데도 스스로 무뎌지는 때가 비로소 붓을 꺾어야 할 적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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