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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r 26. 2024

주름을 부르는 빨대론

빨다 늙다 빨다 죽다

음료 빨대, 나는 빨대를 사용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덜 쓰자, 쓰레기 덜 만들자 하는 환경적인 이유도 있지만 나의 음료 마시는 취향으로는 빨대가 적합하지 않아서이다. 손으로 들고 음료 잔이나 병을 기울이고, 내 벌린 입술만큼의 적절한 양의 음료가 자연스럽게 흐르듯 들어오면, 내 안의 호흡으로 냉큼 들여 집어삼키는 느낌이 좋다.


음료 빨대가 굵든 가늘든 종이든 플라스틱이든 모두 부자연스러운 힘을 입술에 주어야 한다. 구심점을 향하는 수많은 수직 주름과 함께 똥그랗게 힘을 주어 순살인 아래위 입술을 뾰족하게 모아서 그 대롱 안으로 집중하여 액체를 빨아올려야 한다. 아, 벌써 힘들다.


보통의 음료는 빨대가 없어도 마실 수 있다. 직접과 간접의 차이도 있다. 나는 직접 닿는 것을 좋아한다. 평평한 윗입술에 남은 음료의 흔적은 영화나 드라마의 간지러운 소재가 되기도 한다. 빨대로 음료를 마시다 입술 주름에 낀 음료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음료에 빨대를 꽂으면 간접적으로 한 다리 걸쳐 음료가 건너온다. 특히, 버블티의 굵다란 대롱을 타고 등산하듯 올라오는 타피오카 펄의 갑작스러운 급속이 입천장을 때리고 목젖을 울린 경험이 있다면 목숨의 위험까지도 느끼게 될 것이다.


집중하듯 쏘아 담아 입안을 채우는 쾌감을 즐기려는 습관 때문인지, 입술을 모아 빨아올리는 영아기 집착이 남아서인지 모르지만, 쓰지 않아도 되는 힘을 쓰는 느낌은 여전하다. 어쩌면 나는 온몸으로 음료를 마시는 원시인인지도 모르겠다.


음료 빨대가 주름을 부르는 건 여러 실험으로 증명된 바 있다. 내가 빨대를 쓰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인간 빨대, 추한 마음의 주름이 빨대로 진화한 사람들이다.


나는 대체로 혼자 지내는 사람이라 관계적 빨대 상황에 많이 놓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주변 또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재미있는 현상들을 관찰할 수 있다. 인간 빨대는 뻔뻔하고 빨리는 사람은 착각의 고수인 경우가 많더라.


빨대와 빨띠의 관계는 인간 기질의 자석과 같은 특성이다. 아무리 말려도 다 빨려야 정신 차린다.


빠는 사람은 당연시하고 빨리는 사람은 애정시 한다. 빠는 사람은 교묘하게 화를 돋우고 빨리는 사람은 미안해한다. 빠는 사람은 큰소리치고 빨리는 사람은 전전긍긍한다. 빠는 사람은 자기가 똑똑하다 생각하고 빨리는 사람은 더 똑똑하다. 그래서 보통 구제불능이다.


이성을 차단하는 빨대, 인간 빨대다.




글에다 33개의 '빨'을 뿌리고 나니 갑작스러운 피곤이 몰려온다. 어느 '빨'대든 주름을 부르기는 마찬가지다. 입술의 주름, 마음의 주름.


주름이 죽음으로 오독되지 않기를 바란다.



#라라크루 화요글감 주제 - 빨아들이기 위한 가늘고 긴 대롱, 빨대: 작작 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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