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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r 28. 2024

'내가 해봐서 아는데' 단상

[시]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p.127


내가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살아가야 한다. 지금.


책을 읽고 돈을 받고 책을 쓰고 돈을 받고 책을 팔고 돈을 받는다. 돈을 받고 책을 읽고 돈을 받고 책을 쓰고 돈을 받고 책을 판다. 저울질의 고수들이 판을 짜고 있다.


그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 보다 훨씬 큰 둥글넓적한 설피를 신는다. 눈에 빠지지 않는 거나 그물에 엉키지 않는 거나 땅과 내 발바닥을 수평으로 맞추어 서 있고 싶은 욕망은 마찬가지다.


내가 읽어 봤는데 괜찮아. 십 년쯤 되었지만 진리야. 역시 하이데거지. 게거품을 물고 권하는 책을 나는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당신이 십 년 전에 읽고 진리가 된 그게 지금도 진리일까. 비싼 이름에 덜컥 올라앉아 당신의 지금 시간을 남들에게 자랑하느라 허비하는 건 아닐까.


내가 써봐서 아는데 책이란 게 별다른 것도 없어. 그냥 써서 내면 되는 거야. 일종의 비평 같은 건데 쓰다 보니 꽤 잘 써지더라고. 한번 보시라. 최종 수정판인듯한 낡고 지저분해진 그의 원고를 후루룩 후루룩 넘기면서 나의 모든 모공이 꽉 막히는 거 같았다. 거기서 비트겐슈타인 얘기는 왜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했다. 어렵다.


너도 책 하나는 써야지. 그게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쓰다 보니 돈도 되고. 재미도 있어. 너도 베스트셀러 한번 만들어야지. 거기서 뒷목을 잡고 읽던 원고를 돌려주었다. 너를 베스트셀러 (Best Cellar)에 저장하고 싶다, 오래오래.


당신의 과거를 내게 씌우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지금의 나를 살 테니!




오늘 일진 왜 이런가. 그와 시간을 맞추지 않아야겠다. 그래 놓고는, 집에 와 내가 한 건, '존재와 시간, ' '철학적 탐구'를 주문하고야 말았다. 나는 책을 사기만 한다. 나는 돈을 주기만 한다. 지금의 나를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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