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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pr 23. 2024

우연의 감옥

초(楚) 나라 노래를 기다려도 좋은 곳

진공 같은 공간, 우주같이 멍한 곳, 예기치 않은 당황, 스스로 만든 안식처, 본래 있어야 할 곳인 것처럼 그렇게 그곳에 한동안 서서 당황스러운 편안함을 즐긴다.


들어간 구멍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는 조건이 있다면, 나는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갇혀진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발을 디뎌 내리는 순간, 들어가는 입구만 허락된 호텔 캘리포니아에 투숙한 것이다. 절대 떠날 수 없는 곳, 우연한 감옥에 나를 가둔 사건이다.


친구가 드문드문 나를 캐내어 해봤다는 성격검사에 갸우뚱한다. 무슨 검사인지도 말해주지 않고 말도 안 된다는 듯 던졌던 친구의 질문이다. '너 이런 사람인 거야, 정말?' 나도 잘 모르겠다.


에너지 넘치고 잘 웃고 잘 울고 기뻐 소리치고 슬퍼 통곡하고 툭하면 파티하고 만나러 달려가고 환호하며 허그하고 크게 손뼉 치며 웃는 그런 사람,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살았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건지,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보며 정리하라는 건지, 나온 단어들이 의미심장했다. 내면이란 건가.


홀로, 숙이고, 동떨어진, 끝으로 가는, 잠겨있는, 가장 큰, 지혜, 한적한, 완성의 끝인, 세속을 버리고, 찾기 위해 떠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높은 이상의 추구, 지식의 외로운 섬, 별이 뜨는 황무지, 정신, 목적, 신성, 어둠, 신비, 침묵, 고독, 성찰, 내면, 연락이 안 되는, 무소유...


이런 것들을 실현하려면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이 편하다. 초(楚) 나라 노랫소리라도 들린다면 털썩 주저앉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할 텐데 사람의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어디로 갔을까.




최대한 기둥에 바짝 붙여 주차를 하곤 언제나처럼 내려 차 문을 닫는 순간 한 발짝씩만 허락되는 네 개의 막막한 면과 마주했다. 나갈 틈이라곤 없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공간에서 찰나의 몽상에 빠졌다. 드디어, 친구가 말했던 나의 성격과 일치하는 공간을 만났다.


스마트폰을 본다. 한 시간 남았다. 그곳에 그냥 서서 온갖 상상을 하며 내 성격을 분석해 보고 괜한 편안함에 기둥에 기대 보기도 한다. 와, 내가 나를 이런 곳에 들여놓다니! 신기한 시간이다. 20여분.


에스쁘레쏘가 마시고 싶으니 문제 해결 모드로 전환한다.


다시 주차하여 틈을 살린다.

내 차바퀴를 딛고 본넷 위로 뛴다.

옆 차가 낮으니 위로 미끄럼 타며 나간다.


결국, 운전석을 거쳐 조수석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빠져나왔다. 새로운 경험에 에스쁘레쏘가 더 맛났다. 비현실적인 이상한 시간과 공간은 내 삶의 탄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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