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by 하마구치 류스케
바람직한 벼락치기를 하고 있다. 류스케 놀이.
조용히 1cm씩 움직이면서도 그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며 이제야 안정을 찾아간다. 사소한 많은 부분들이 내가 거쳐온 찰나와 마주치고 당황하다가 추스려 일어났다. 부끄러워 이내 내숭 떨듯 고개를 숙이는 작은 멈춤들이 내 몸과 마음 곳곳에 박혔다.
말로 전해지는 것보다 보는 것과 듣는 것만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의외로 많다. 맹점으로 가려진 부분을 빼더라도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의 충격으로 삶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나는 오래전 새벽 도서관에 첫 번째 입장객이라 생각하고 벌컥 문을 열었을 때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한 장의 사진 같은 멈춤에 평생동안 영향받으며 산다. 어쩌면 성에 대해 조금은 열어두고 사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세상에 추한 것은 없다. 시각 피질에 들어오자마자 뒤틀린 편견일 수도 있는 과거와의 조우일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든 벌어진다. 아무 일이나 벌어질 수 있다. 어떻게 반응하고 봉합하느냐에 따라 눈물의 높이와 고뇌의 농도가 결정된다. 가슴속에 찢어져 남은 상처들은 어떻게 회유되어도 그대로다. 그냥 그렇게 산다. 앞으로 잘 될 겁니다 라는 비현실의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 좋겠다. 스스로 다독여야 한 발씩 뗄 수 있다.
새벽이든 낮이든 저녁이나 밤에도 혼자서도 둘이여도 지켜야 할 규칙들에 철저하다가 어떤 신호에 손을 놓기도 한다. 그렇게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타버리듯 정신이 녹아내리며 신비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마치 신들리듯 이성과 감성이 하나로 수렴하는 순간에는 무슨 일이 꼭 벌어지고 만다.
내 정신이 아니었던 순간에 내가 만들어둔 상태에 덫처럼 걸릴 때, 댓글에 결코 쓰지 않으리라 했던 표현을 써서 남기고 가슴이 후들거렸던 때, 매혹적인 글을 읽다가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갈증 하면서 그 모든 순간들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한 뼘쯤 마음이 자란다.
류스케로부터 흘러나오는 언어에 매료된다. 아슬아슬한 위험을 감지하며 금기가 발설되고 시공간을 채우며 앞이 막막하다. 너무나 세밀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순간들이 보란 듯이 늘어져 열린다. 거기서 본능을 감지하고 증표들을 수집한다.
그냥 인정하면 되는 것들에 속박되어 자신을 살해하고 진정한 실체도 못 알아보는 탄식의 순간들이 맛깔나게 나열된다. 매혹적인 영화다.
전하는 메타포들이 아름답다. 과거를 버리는 방법, 섹스를 저울질하는 기법, 하늘을 채우는 나무를 무심히 지나가는 찰나들이 여러 류스케 영화에서 똑같아 놀랐다. 마치 각각의 영화들의 그 지점들을 엮으면 뭔가 더 알 수도 있을 거라는 신호 같았다.
큰 숲이 전하는 메시지는 어렵지 않은데, 숲 속의 자잘한 나무에까지 독특하게 배어 있는 분위기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류스케의 그 숲으로 다시 들어가나 보다. 치유를 향한 조용하고도 농밀한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