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Apr 14. 2024

키메라의 혼

뛰쳐나와 바라보며 갈망하다

키메라는 사자, 염소, 뱀이나 용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그리스 신화의 괴물입니다. 키마이라(그리스어: Χίμαιρα, 영어: Chimaera) 또는 키메라(영어: Chimera)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맹렬하고 무자비한 그런 괴물이죠. 원래 그리스어 Χίμαιρα는 '암염소'라는 뜻입니다.


의학 분야의 생물학에서도 키메라(Chimera)라는 용어를 씁니다. 동일한 생물 개체 안에 유전자형이 서로 다른 세포조직이 같이 존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떻게? 무엇이? 왜? 그런 주제를 연구하고 다른 종 사이의 새로운 종을 만들려는 용도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최근 보았던 이탈리아 영화 키메라(LA CHIMERA)에도 다른 세상과 연결하는 능력을 가진 다른 자신을 품고 사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 연결을 갈망하는 상태의 발현을 '키메라(Chimera)'라고 하더군요. 간절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같은 겁니다. 슬픈데 결국 기뻤습니다.


대학 때 생물학을 교양 선택으로 공부하며 이러한 키메라에 관심을 갖는 건 사람 자체가 키메라여서 그렇다고 혼자 들떴던 적이 있습니다. 키메라(Chimera), 멋지지 않나요?


여러 개의 독립적인 정체성으로 서로 대립하기도 하는 다중인격이 아닌, 언어학에서 연구하는 이음(異音)으로 이해합니다. 이음은 하나의 본질적인 소리가 상태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비슷한 소리입니다. 한 개 소리의 가족 구성원으로 있다가 어떤 특정 환경이 되면 그 환경에 맞는 특정 멤버가 달려가 집중하여 갈증을 해소하는 거지요.

 

어떤 생각이나 일에 몰입하여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같은 다소 신비한 느낌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키메라의 혼을 불러내는 순간입니다.


어떤 글은 마음이 뜨거워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쓸 때가 있습니다. 다 쓰고 나면 다시 읽고 혼자 뿌듯하고 미소 지으며 잘 살아낸 기분이 듭니다.


어떤 사람의 글을 읽을 때 흥분하여 몸이 떨리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다시 읽고 또 읽어도 더 진한 온도로 흥분된 열기는 가슴을 채우고 결국 이성마저 지배합니다.


어떤 주제를 정리하고 싶은 갈증에 시달리며 산더미로 쌓인 자료에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이 뜨거워지며 따로 각자였던 것들이 기적처럼 연결됩니다.


어떤 사람을 기억하다가 닿지 못했던 간절한 순간들에 골몰하며 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느 순간, 모든 것들이 다 닿아 수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름다운 글들, 쓰고 싶습니다. 읽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세상, 보고 싶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사람, 갖고 싶습니다. 주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데미안을 읽으며 쓰다가 제가 가진 키메라(Chimera)를 데미안도 겪는 순간과 마주쳤습니다. 바로 그런 상태를 저도 종종 경험합니다.

They are not focused on anything,
그 어떤 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it was an unseeing gaze
어떤 것에도 응시하지 않았다.

they seemed transfixed with looking inward or into a great distance.
얼어붙은 듯이 그 내부의 세계 또는 저 멀리 아득한 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 he has gone completely into himself;
... 그는 완전히 자기의 세계로 몰입했다.

he was inaccessible...
그에게 닿을 수 없었다.

- p.66~67, Demian, 1989, Harper & Row, Publishers


싱클레어가 전율하며 목격한 데미안의 그 상태는 데미안의 소리가 다른 곳으로 닿아 돌아와야 하는 운명 같은 삶의 여정입니다. 그래야 사니까요. 그렇게 사는 거니까요.



사진 출처 - 키마이라 아풀리아 판( ca 350-340 BCE, 루브르) by 위키백과 재인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