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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y 06. 2024

내 품 안의 비

세차게 뜨거워도 결국 떠나요

색다른 계획을 세우고 레몬 도시락을 쌉니다. 가장 큰 가방을 벌려두고 편하게 던져 넣은 책들 옷들 그리고 글 꾸러미가 걱정스러운 듯 저를 봅니다. 뭐! What? 목적은 있어요. 지금이야말로 낯설게 읽어보고 끝장내고 싶어요. 하지만 몇 페이지를 읽어보곤 바로 좌절합니다. 내가 이따위로 썼구나. 재밌는데?


복잡하게 가고 싶진 않아요. 제 키만큼 제 생각만큼 제 남은 날 만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어제는 영화를 봤어요. 아니, 뭐? 퇴고한다며! 퇴퇴퇴의 시작이 퉤퉤퉤만 아니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보는 것도 퇴고하는 과정이에요. 궤변이라고요? 그 궤변이 저의 안식처예요.


저 자신을 책임지는 법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녀의 책임과 그녀의 집착과 절망이 가여워 마음을 떨고 있다가 깨닫습니다. 놓아야 자유롭게 자신이 됩니다. 움켜쥐고만 있으면 고통만 남게 돼요. 영화는 그렇게 저를 흔들다 갑니다. 그녀들은 저를 이렇게 차분히 앉혀둡니다. 제 글을 넘기며 읽기 시작합니다.


새벽에 비가 왔어요. 0.3mm, 안개 같은 빗속을 뛰었습니다. 오르막에 비를 흠뻑 안으며 젖어들어오는 온전한 느낌으로 다 잡고만 싶었어요. 젖은 머리카락 끝에 달려 있다가 툭! 물을 가득 머금은 옷 끝에 걸려있다가 투두둑! 분주한 운동화 끈을 지나서 손목에 두른 손수건을 모두 적시고 비는 다시 떠나더군요. 


떠나는 비를 배웅하며 숲을 헤맵니다. 초록 잎을 지나는 비는 소리가 다 달라서 노래하는 것 같아요. 큰 잎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 작은 잎에 베어지는 날카로운 소리, 땅 위에 엎어지는 철푸덕까지 무거운 구름이 몸 푸는 소리를 가만히 걸으며 응원합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조용히 다독여봐요. 마음 가는 속도대로 갑니다.


이제 시작해 볼게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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