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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y 08. 2024

셀프 경고장 /selpʊɡɘŋɡɔʐaŋ/

9주차 - 15분의 방황에 마음이 춥다

수업 후 학생들이 가방을 싸서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또박또박 점수를 매긴다. 28점! 이렇게라도 형편없는 셀프 평가를 해 두고 경고장을 안고 지내야 조금 더 정신을 차릴 것 같다.


시간이 너무 아쉽다. 15주 중 기말고사 1주, 공휴일 동영상 업로드로 2주 수업을 대체하면 실제 강의실에서 만나 눈 맞추고 하는 수업은 12주가 된다. 1주 수업은 150분, 그중 15분을 어영부영 방황하면 수업을 제대로 해야 할 10%가 사라져 버리는 거다. 학생들에게 미안한 순간이다.


9주 차에는 이론 세 분야가 서로 물리게 되어 학생들의 머릿속에 엄청난 양의 정보가 홍수처럼 섞인다. 1교시에 수업하러 온 기특한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론이 겹치면 이론들의 경계에서 정리하며 전환하는 활동을 한다.


이번 학기는 부교재 논의 활동도 꾸준히 하려고 계획하고 보니, 너무 어렵거나 설명이 많아야 하는 이론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실제 응용 가능한 언어적 현상들을 다른 방식으로 복습하고 업데이트하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음성학-음운론-형태론을 건너오니 벌써 몇몇 학생들의 얼굴은 회색이다.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눈이 초점 없이 내게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으면 어서 깨어나도록 신선한 수업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수업 종료를 15분 남기고 형태론 팀활동을 할 것인가 부교재 새로운 논의 주제를 다룰 것인가 아니면 부교재 주제 중 중요한 부분을 강의식으로 간단히 복습하며 마칠 것인가, 세 가지를 두고 잠깐 고민했다. 팀활동으로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강의식으로 개념을 설명하며 질의응답을 하기로 했다.


1분만 지나도 알게 된다. 앞으로 남은 14분이 남은 하루의 비명으로 가슴속 깊이 박힐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시작한 강의를 조금 바꿔 학생을 호명하며 질문을 했지만 학생들의 마음은 벌써 학생 식당에 앉아 있는 듯했다. 상상과 여백, 대상의 거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 상상에 들어가 혼자 신나게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몇몇 학생의 끄덕끄덕 사이에는 회색 낯빛의 지루함과 풀린 눈빛의 생선 비린내가 알알이 박혀 있었다. 수업 마치기 전, 다음 주를 위한 의례적 공지 멘트, '자, 그럼 다음 주에는...' 순간, 학생들은 거의 일제히 바른 자세로 고쳐 앉으며 빛나는 신입생 화색으로 돌아왔다. 애써 웃으며 친절하게 수업을 마쳤다.


웃음뒤에 가려진 내 실망의 흐느낌은 눈치채지 못했겠지. 기운 없이 책과 자료를 챙기며 속된 소리를 품은 점수를 나 자신에게 던졌다. 28점!


새로운 다음 주를 다짐해 본다. 기다려라!



▣ 강의 계획 드래프트: 주차-교재-부교재-주제-질문

▣ 10주차 메모 - 통사론 (구조 및 변형생성문법), 브랜드 네이밍 형태론적 분석 업데이트, 캐치프레이즈 구체화, 부교재 논의 주제 및 질문 (7. 의미전달능력, 8. 대상의 존재감, 12. 텍스트에서의 문장구조)

IPA(국제음성기호) 키보드 등 소리 전사 및 발음 자료

1. IPA 기호(이미지) - 영어 자료 / 한국어 번역 자료

2. International Phonetic Alphabet(IPA) Keyboard: https://www.internationalphoneticalphabet.org/html-ipa-keyboard-v1/keyboard/

3. IPA Reader: http://ipa-reader.x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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