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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9. 2024
상상의 깊이 /saŋsaŋɛɡipi/
8주차 - 눈빛과 듣기의 깊이에 비례하다
첫 낯섦의 충격을 기억할 것이다. 나 또한 이 작은 보라색 책을 처음 열었던 당황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책에 밑줄을 긋지 않는 나의 고집을 기어이 꺾은 책, 교보문고에 나가 한 권 더 샀다. 밑줄은 한계를 긋는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한다. 내 밑줄은 나의 세상을 폐쇄하여 혹시라도 볼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은밀한 마음을 들통 내는 것이다. 이 작은 책에 색깔 별로 내 생각의 밑줄이 다채롭다.
학생들로부터 받은 진로와 목차를 엮어 생각하여 제출하는 첫 부교재 과제를 통해 나는 학생들이 지금껏 해오던 다른 읽기 활동과는 달라 무척 생경한 표정으로 내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런데 그 순간들이 즐거웠다. 학생들은 해야만 하는 것들이라 긴장으로부터 시작했을 테지만 한 세계의 다른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흥분하고 있었다. 역시 그랬다.
보통 본교재를 중심으로 부교재는 학생들 재량에 맡기기도 하지만 '성우의 언어'는 나도 겪어 보았듯이 혼자서 깊이 생각하며 읽는 것은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 숨어있는 보물을 캐려다가 단 1센티미터 아래의 보물상자를 포기하고 다시 흙으로 덮게 되는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읽기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서 호흡, 상상, 여백, 미메시스, 감성과 관련한 부분은 여러 번 정독하게 되었다. 생각들이 상상을 더해 머릿속을 불분명하게 헤매고 있을 때 그룹 논의를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해석과 상상의 도움으로 자기 자신의 사고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한주 전에 받은 그룹 논의 결과를 펼쳐두니 그룹원들의 논의 특성과 정리 보고된 부분의 깊이가 드러난다. 두 개조가 같은 주제의 토론을 하고 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어떻게 부교재의 주제를 논의하고 돌파해 나갈 것인지 스스로 정리하며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 학생들과 더 깊이 나눌 부분에 대해 밑줄로 표시하여 질의응답식으로 부교재 피드백 수업을 했다.
호흡의 시대에 따른 감수성
시선이 지배하는 현장감과 공간감
실제 목소리로 나타내는 여백의 깊이
완전한 이입, 미메시스의 이해
소통 도구로서 드러나는 화자의 삶
연속적인 변화 과정으로서의 감성
중심에서 세부를 지난 전체성
학생들의 눈빛과 표정으로 알 수 있다. 수업 중에는 그들이 그날 수업에 대한 즉각적이고 깊은 피드백이기 때문에 항상 깨어서 살펴야 한다. 끄덕이는 고개들, 무엇엔가 빠진 듯 무의식적으로 벌린 입,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는 조금씩 방향을 잡으며 나가고 있었다.
이번 주에는 지금까지의 개념들을 응용하여 연결할 수 있도록 성우의 연기를 듣고 시선을 느껴보고 대상의 거리와 감성을 느껴보도록 했다. 듣기만 하는 거라 말하니 여러 학생들이 눈을 감고 집중을 해서 감동이었다. 그 어떤 시각적인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싶은 의지에 진심으로 고마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