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냐며, 뭘 하겠다고 하면 일단 남편이 내지르는 한 마디입니다.
그림을 배우고 싶었어요. 제가 쓴 글에 제가 그린 삽화를 넣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드로잉을 해보겠다며 포토샵과 일러스트 기법을 배우러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겠다 할 때도 남편은 '돌았구만!'을 날렸었죠. 자기가 배우다가 중도 포기한 거라 '질투하는 게 틀림없어!'하며 끝까지 배웠어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일러스트 기법보다 사진 자료를 보정하고 조작하는 연습을 했어요. 이건 아닌데...
로망만 가득한 채, 가입하고 눈 읽기만 하던 드로잉 카페에서, 지난 화요일부터 5일간 다양한 재료로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미라클 드로잉 모닝' 클래스가 열린다는 거예요. 공지를 읽으며 흥분해서 마구 소리 지르며 방 안을 뛰어다녔어요. 꺄아~!
"몇 시에 하는데?"
"5시요!"
"아이들 수업해야 하잖아?"
"새벽 5시예요."
"돌았구만!"
주최하시는 분이 독일에 계신 작가분이라서 시간이 그런 것 같았어요. 사실 제가 돌았건 안 돌았건 이해 못 하겠죠. 저처럼 5시에 일어나는 아침형 사람이 아니면 어차피 이해 못 할 테니까요.
최근 벌려 놓은 일도 많아서, 교습소 아이들을 위한 여름방학 프로젝트도 다섯 개나 오픈해 두고, 일주일 두 번 글도 써야 하고 매일 왼손 필사 미션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순조롭게 하루가 돌아가는 5일간의 일정에 불끈 교감신경이 곤두섰어요, 이게 무슨 전쟁도 아닌데 말이죠! 남편은 제가 미술도구들을 챙길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잘 되고 있냐 비꼬며 혀를 끌끌 찹니다. Go away or I'll bite you~!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아이가 쓰던 유성 색연필, 수채 물감, 포스터 칼라를 모아두고, 마카펜이랑 더 준비해야 할 것은 조형 예술 전공한 아이가 빠른 주문으로 챙겨 주었어요. 그림 그리는 종이도 정말 다양하고 이름도 어렵더군요. 브리스톨지, 처음 들어봤습니다.
첫째 날, 색연필 드로잉 - Hello from London
구도 잡는 게 어려웠어요. 잘못 그린 부분이 여럿에다가 중요한 준비물인 겔리롤 펜이 없어서 다음날 사와서단추 그리며 완성했어요. 넓은 면 색칠하는 건 집약 노동이 필요하더군요.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어요.
둘째 날, 오일 파스텔 - 여름 바다
파스텔 그림을 볼 때는 그냥 슥슥 쉽게 면을 채우면 되는 줄 알았어요. 면을 곱게 채우기 위해 면봉으로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찰필로 찍고, 그런 기법들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마스킹 테이프로 테이블에 고정했다 떼면서 종이가 푸드득 같이 찢어져 올라옵니다. 으아~악! 너덜너덜, 제 마음도 너덜거립니다.
넷째 날, 펜드로잉 - 가재
자로 재어가며 글자 도안을 하고 비율을 생각하며 가재를 잘 그리고 싶었는데 집게발을 너무 작게 그렸어요. 깔끔하게 보이기 위한 마무리를 하고 나니 삐뚤거리며 그렸던 테두리가 정리되어 신기했어요.
셋째 날 수채화 - 능소화
학교 다닐 때도 수채화는 참 어려웠는데 작가님의 지도대로 그리니 꽃처럼 그려지더군요. 입체감과 명암이 살아나는 게 신기했어요. 배우는 기쁨을 한껏 누려봅니다.
다섯째 날 혼합 재료 - 어반 스케치, 카페
유성펜이나 마카로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 거지? 한껏 호기심에 차서 알려주시는 대로 부지런히 따라갔어요. 계획된 한 시간 반의 수업 동안, 밀도를 채우며 꼼꼼하게 그린 어반 스케치가 저는 참 좋더군요. 자유로워요.
이제 한 발 용기 내어 디뎠으니 다시 한발 나갈 겁니다. 꿈을 이룰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