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무책임을 이해하기 힘들다. 부모가 된다는 건 세상을 업고 가는 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형제는 매일 싸우면서도 꼭 붙어 다녔다. 형이 동생을 챙길 때 얼마나 다정하고 듬직해 보이던지.
그런데 둘이 정말 다르다. 요즘 MBTI로 말하자면 형은 극J, 규칙을 꼭꼭 지키며 안도하는 타입인데 동생은 극P, 상황이 변하면 바로 변하고, 자기 마음이 변해도 상황을 거기에 맞추려 해서 규칙이 있는 곳에서는 적응시키는 게 어렵다.
형은 지각해도 울고, 동생이 숙제를 안 해도 삐지고 화내고, 정각에 끝내주지 않으면 전전긍긍했다. 지각을 자주 하니까 울게 될 일도 많은데, 왜 우는지 물어보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는 형 옆에 있던 동생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내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매일 온라인 게임하느라 우리를 늦게 데려다줘서 지각하는 거예요!"
형이 울다가 동생을 쿡 찌르는데, 바로 한마디 더 했다.
"아빠 게임하는데 학원 데려다 달라고 하면 때려요."
(아아아악~!!!)
우는 형 달래며, 아빠에게 맞는 게 일상인 듯 무심한 동생에게 놀라며, 숙제도 꼭 챙겨주고 지각도 안 하게 하겠다는 이 형제들 아빠의 이전 다짐을 떠올리며 톡을 날렸다.
"아버님, 우리 아이들 영어 학습 관련해서 상담드리고자 하는데요, 오후에 통화 가능하신지요?"
전화 통화 매뉴얼을 만들며, 어떻게 전해야 아이들을 때리지 않을지, 어떻게 말해야 기분 상하지 않게 아이들 상황에 도움이 될지, 긴장되면서도 비장한 전략가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다.
아이들 영어 학습은 제쳐주고 이 아빠가 뭔가 느끼도록 해주어야 하는 상담 전화다.
"아이구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신경 쓸 일이 좀 있어 가지고, 아이들을 제시간에 못 데려다줬어요."
극도의 예의 바름이 혼란스러웠지만, 그 신경 쓸 일이, 혹시 인터넷 게임이냐 하마터면 입 밖에 내버릴 뻔했지만, 난 아이들을 100% 믿는다. 일단!
아이들을 위해 할 일들을 시간별로 계획을 만들겠으니 신경 써주시라, 그 시간에 아이들 책을 읽히며 녹화해서 비공개 숙제 밴드에 올려주시라. 나의 간곡함과 단호함이 전해졌기를 바라며 통화를 마쳤다.
아이들 학원 오기 전 두 시간, 온라인 게임은 불가능일 거다. 숙제 시간 한 시간, 학원에 라이드 하는 시간 40분, 결국 달랑 하루 실천하곤 감감무소식이다.
규칙적인 지각생들을 짠하게 바라보다가 직장 다니는 엄마에게 톡을 보냈다.
"어머님, 우리 아이들 영어 학습 관련해서 상담드리고자 하는데요, 언제 통화 가능하신지요?"
엄마의 힘듦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답답하고 슬픈 통화를 하면서, 결국은 아이들이 좀 편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너무 멀리에서 다니니 아이들도 힘들 거다. 아이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집 가까운 학원에 보내시면 좋겠다.
아빠의 잦은 분노 사정거리 밖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안전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인터넷게임에 빠진 아빠, 그 때문에 아이를 때리는 아빠, 이런 폭력은 전문가의 적극적인 개입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두 형제 아이들은 3년 반동안 다니던 나의 교습소를 곧 그만두었다.
가족상담사로 길을 바꾸어야 할까. 그러려면 또 먼 길... 여전히 답답한 가슴이다.
삽화 Yoona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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