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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2. 2024
해리포터 파닉스
터질 게 터짐
'선생님, 우리 아이 해리포터 원서 읽혀도 될까요?'
'아... 아직 좀 이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초등학생인데 해리포터 원서 읽는 아이가 내 아이였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보통 초등 아이들이 해리포터를 영어로 읽고 이해하며 상상하며 신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어요.
저는 첫 상담에 재밌게 읽었거나 읽는 중인 한국어책과 영어책을 꼭 가져오라 하여 내용을 읽히며 같이 이야기합니다. 제가 아이를 면접하는 첫 단계입니다.
옥스퍼드 리딩트리나 해리포터, 기타 클래식 영어원서를 가져오는 경우 조금 더 면밀하게 상담을 진행하게 됩니다.
많은 경우 놀랄 일들이 벌어집니다.
엄마나 아빠가 같이 앉아 있고, 아이는 책을 크게 자신 있게 읽지요. 그다음 제가, '어떤 일이 펼쳐지고 있는 걸까?' 호기심 가득 물어보면 자신 있게 읽은 내용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럴 때 페이지의 핵심인 단어나 표현의 의미를 물어보면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맞은편에 앉아있는 엄마는 아이가 낮은 레벨을 받을까 전전긍긍입니다. 엄마 표정이 바뀌면 아이는 긴장해서 눈치 보며 더 버벅거리게 되고요.
한국어든 영어든 책 읽기는 습관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뿐 아니라 학교나 가정의 학습 환경 또한 무척 중요하고요. 글자를 시각적으로 판독하여 제대로 소리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어려운 원서를 시작하게 하는 건 아이의 인지과정을 무시하고 제대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거예요.
소리 내 읽는 것의 기쁨, 스스로 소리 낸 단어나 문장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는 경이, 거기서 이어지는 이해는 즐거운 상상력으로 이어져야 하지요. 어려운 책을 읽는 것,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즐겁게 읽는 거예요.
그 두꺼운 해리포터 원서를 파닉스로 쓰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더군요. 흥미로운 그림이 들어있는 삽화 버전의 책을 텍스트만 집중해 읽고서는 페이지를 넘기는데 제 가슴이 철렁했어요.
읽은 부분을 이해도 못하고 그 이해를 돕는 그림도 안 보다니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를 쓰는 아이는 불안 속에 스트레스 수준도 높습니다. 거기에 부모의 욕심은 스트레스를 강제로 아이에게 주입하는 상황이 되지요. 아이에게 여유를 주고 읽는 즐거움이 뭔지 같이 발견해 나가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코로나 줌수업 기간 동안 여러 아이들의 가정 내 학습 환경을 엿볼 수 있었어요.
줌수업 동안에도 끊임없이 소파에서 휴대폰 동영상을 크게 보거나, TV를 보며 야구를 응원하며 큰 소리로 흥분해 있는 엄마나 아빠가 있었어요. 아이는 수업하는데 다른 가족끼리 앉아 떠들며 음식을 먹는 것도 제겐 이상해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부부싸움하는 소리까지 너무 적나라해서 정말 깜짝 놀란 경험이 있습니다.
해리포터 파닉스 엄마는 좌절합니다. 제 아이가 읽은 걸 이해를 못 한다고요?
해리포터 파닉스 아이도 어리둥절이에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제가 뭘 잘못한 거죠?
해리포터 파닉스 눈치챈 저도 기가 막힙니다. 가장 낮은 리딩부터 시작해야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