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lies bleeding
사랑은 피 흘리는 고난 속에서 진하게 피어나는 거야? 아니면, 피 흘리는 고통 속에서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거야?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혼잣말에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내 눈에는 bleeding 앞에 콤마(,)가 투명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되는 게 아니라, 환각 속 복수를 사랑으로 착각한 검붉은 피의 향연, 너를 위해 그의 머리를 으스러뜨려 조각낸 만큼 사랑이 깊다는 하드코어 메시지로 왔다.
폭력이 은유라는 거 안다.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가 잠재된 내면이란 것도 안다. 그 은유와 내면이 실현되었을 때의 가감 없는 모습을 무슨 커다란 서사적 로맨스처럼 만든 것에 기운이 빠졌다, 기분이 나빴다.
'바리시니코프'라는 성에 더 끌려 들어갔던 영화관, 안나 바리시니코프는 발레리노이면서 배우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딸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눈을 꼭 닮았다. 연기는 흐물흐물 양념 친 순두부 같았지만... 그게 감독의 주문인 것도 같았다. 어쩜 그렇게도 명랑 천박한지!
이 영화가 조금은 다른 종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면 '가장 따뜻한 색, 블루'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극적인 폭력의 피바다가 아닌 격렬한 뜨거움 뒤 은근한 여운이 있어야 했다.
복수에 관한 이야기라면 '친절한 금자씨'나 '올드 보이' 같이 상상을 초월하는 설정들로도 말미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루(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내겐 가장 뭉근한 사랑으로 보였다. 내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는 원인들을 물리적 폭력으로 제거하는 게 사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공 화합물이 가미된 근육의 집착적인 폭발에 놀랐다. 연쇄 폭발하다 천진난만하게 잠든 모습에 비위가 상했다. 마지막 몇 분, '델마와 루이스'를 흉내내기라도 한다면 정말 화가 날 것 같았지만 딱 거기서 끝났다.
그. 래. 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있었던가 되새김해 본다.
그녀에게 매혹되는 시선이 느리게 다가갈 때의 아름다운 눈빛
비이성과 폭력 속의 혈육에 절절한 연민으로 분노를 누르는 순간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해결책을 생각하며 불안하게 피우는 담배
'루(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긴장과 당황과 분노와 연민의 눈빛만 내게 남았다.
Love sometimes tells terrifying lies, bleeding itself. 사랑은 때때로 무서운 거짓말을 하며, 스스로 상처를 입는다. 동사보다 명사로 딱딱하게 굳혀둔다. 꼼짝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