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가 우람하게 곳곳마다 서 있는 그 산에서 일출을 보고 싶었다.
새벽은 잿빛으로 도착했다. 두둑두둑 잔비가 듣는다. 아침 빗방울이 쌀쌀하다.
하루 시작이 다르면 당황보다는 해방감이라 여긴다. 다시 훅 열어젖힌 오늘이라는 문으로 새로운 것들이 들어오겠지.
체계 없이 던져 넣었다가 구깃거리며 울상인 옷이 생각났다. 나도 옷도 온기가 필요한 날이다.
낯선 곳에서 틀어진 계획으로 맞는 따뜻함은 호락하게 안기지 않았다.
흐린 핑크색의 큰 다리미를 콘센트에 꽂았지만 금세 온기가 오르지 않는다. 여기저기 뚜껑과 버튼들을 눌러도 보고 열어도 보지만 뭘 하라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우연히 돌린 다이얼에 삐릿 소리가 난다. 그제야 몸을 덥히는 다리미를 보며 쉬운 게 하나도 없구나 정신을 차린다.
그래 너무 쉬우면 재미없지. 살만한 세상은 항상 모험이다.
깡똥하게 잘라 업사이클링한 청자켓을 펼치고는 운동하던 근육까지 써가며 괴력의 다림질을 했다. 이렇게 온몸을 던져 눌러 다려야 하는 옷이 있다니.
쉽게 생각했다가 시간과 힘을 더 쓰는 일은 흔하다.
꼼꼼히 해오라는 숙제를 받고 흠, 한 시간이면 하겠어, 했다가 반나절을 끙끙대고,
네비만 믿고 이것밖에 안 걸리네 했다가 점점 늦어지는 도착 예상 시간에 당황하고,
산행 초반에 의기양양 힘을 다 빼고, 내려올 때 너덜 덜컹거리는 무릎에 앞이 캄캄하고,
일터 스트레스에 옷정리 한판하자 다 끄집어내고는 정리하다 힘들어 지쳐 잠이 들고...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상처와 타격과 해방과 자유와 사랑이 넘실거리는 곳이다.
고개를 십 오도쯤 들고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보폭으로 행복하게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산행 불발에 여행지에서 문득 다림질하며, 아무리 꾹꾹 힘주어 다려도 펴지지 않는 주름쯤은 슬쩍 무시하며, 최선을 다하는 지금이 내 삶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제일 잘 다려진 옷을 입고 가을 산책을 해야겠다.
쌀쌀한 11도, 목에 스카프라도 둘러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