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멀쩡한 집 놔두고 어디론가 떠나는 걸까.
안에서는 밖을 보고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본다. 나는 마치 내 존재를 틀림없이 아는 양 다른 사람을 궁금해하고 파고들려 한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통해 나를 보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손가락을 따라 길을 간다.
그러다 이게 아닌가 본데 하는 순간 어느 방향으로도 가지 못하고 늪에 빠지고 마는 막막함을 겪는다.
아무렇게나 대답하지 마. 했던 말은 제발 그만 해. 지루함이 지루하고 또 지루할 때 등짝 양쪽에 스멀거리며 검은 날개가 돋는다.
그렇게 멀쩡하디 멀쩡한 집을 놔두고, 정상이기 그지없는 친구와 아랫목처럼 포근한 가족을 두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다.
낯익은 곳에서의 수다스러운 소음에 자신이 속절없이 스며들어가며 사라지는 느낌이 들 때, 들었던 목소리들이 매일 쏟는 자음과 모음의 뭉텅이로 뒤통수를 때릴 때, 매일 만지던 것들마저 나의 손때를 지겨워하며 나를 외면하고 미끄러져 떨어질 때, 그럴 때 커다란 하드케이스를 열어 주섬주섬 이사 준비를 한다.
최대한 나의 편을 들어주는 칫솔과 치약, 세상의 가느다란 끈인 휴대전화를 뒷 주머니에 꽂고, 세상이 태클걸 때 내놓아야 하는 플라스틱 신분증 하나 들고, 보이는 대로 잡히는 대로 싸잡아 던져 담아 바퀴 달린 이동식 보라색 가방과 드라이빙을 한다.
어디로 갈까.
나를 내 부피만큼만 인정해 주는 곳, 내 눈빛만큼만 반겨주는 곳, 내 소리만큼만 열어주는 그 낯선 세상에 이삿짐을 푼다. 거기의 삶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찾아올 끝이 있기 전까지 낯섦과의 고투와 환희와 통증을 통해 나 자신을 더 많이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툭 치기 전까지 아무도 응답해주지 않는 곳에서, 어떤 질문들을 할 건지 어떤 그림을 그릴 건지 어떻게 말을 다시 걸건지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했던 질문들이 목표에 잘 도착했었는지, 내 질문이 타인의 질문으로 다시 되돌아오진 않았었는지, 내가 그린 그림의 색깔이 반전 이미지로 읽히지는 않았었는지, 내가 건 말이 가시로 비수로 날아 꽂힌 적은 없었는지에 대해서 머릿속을 뒤적거린다.
오롯이 혼자여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오직 낯선 곳이어야 떠오르는 것들이 많다.
아무도 말 걸지 않은 곳이어야 정리되는 것들이...
그런 곳에서 나를 찢어발기고 오리고 붙이고 다시 뜯어 낸다.
더 멀쩡한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