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채식주의자 마지막 장면] 마음대로 번역행동학
흐릿하게 흩어진 싸리 빗자루 같은 겹겹의 황톳빛 책 옆에 가지런히 꽂힌 책 표지의 색깔은 #FF2400, 내가 좋아하는 스카알렛 레드였다. 혼이 쓸려갈 만큼 강렬한 색, 무엇을 어떻게 해도 내가 소화해 낼 수 없는 그런 안타까운 색깔이다.
오래전 영어 번역본을 먼저 읽고 한국어 책을 읽었을 때 두 언어 사이의 온도 차이로 놀란 기억이 있다. 오늘 내 눈에 그 두 권의 책이 딱 들어온 것이었다.
영어가 더 가벼웠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마지막 번역 페이지를 살펴보고 흠칫 놀랐다.
한국어 책이 더 간결체로 다가와 내가 끄적거리며 한 번역이 깃털 같다. 몽롱하고 건조하고 울먹이면서도 강하게 참아내는 상황을 내가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너무 살았나...... 그런.
영어권의 정서에 맞는 단어나 표현들이 추가된 것도 같다. 더 깊이 있게 상황을 번역하라 하더라도 내가 결코 덧붙이지 못할 분위기의 표현들이 흥미롭다.
단순한 표현을 dissolve나 take over 같은 단어로 완벽하게 취해서 꿈과 하나가 되어가는 것처럼 표현한 것도 그렇지만 have to나 의문 부호로 어조를 바꾼 것이나 말줄임표의 생략도 새롭다.
언어를 마음에 넣어 들여다보는 일은 신비하고도 기쁜 일이다.
...... 어쩌면 꿈인지 몰라.
...... Perhaps it’s all just a dream.
"Perhaps this is all a kind of dream."
그녀는 고개를 수그린다.
She lowers her head.
She bows her head.
무언가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As if caught in a fleeting trance,
But then, as though suddenly struck by something,
영혜의 귓바퀴에 입을 바싹 대고
she brings her lips close to Yeong-hye's earlobe and
she brings her mouth right up to Yeong-hye's ear and
한마디씩 말을 잇는다.
whispers slowly, each word deliberate.
carries on speaking, forming the words carefully, one by one.
꿈속에선,
In dreams,
"I have dreams too, you know.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the dream feels like everything.
Dreams... and I could let myself dissolve into them, let them take me over...
하지만 깨고 나면
But when we wake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we realize it's not......
but surely the dream isn't all there is?
그러니까,
And so,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there comes a moment when we wake up,
We have to wake up at some point, don't we?
그때는......
then......
Beacuse... because then..."
한국어 from p.221, 채식주의자 by 한강
영어번역(검정) by 희수공원
영어번역(빨강) by Deborah Sm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