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달과 사달, 四達
출생률과 출산율, 전문가들의 허튼짓 같은 논쟁 사이에서, 언어를 정확하게 써야 한다는 꼬장한 틀이 무슨 의미가 있니 하다가 뾰족해졌다. 아무리 저출산 저출생 외쳐도 저명 외국 학자 하나는 한국을 인구 폭발을 해결하는 열쇠로 보기도 한다.
나는 헐렁해지는 면적이나 돈다발보다 인구 밀도가 높아져 받는 뜨거운 스트레스에 더 민감한 편이라 문득 글 속에 '가임, 임신 가능성'을 박아 넣은 것이었다. 노란 싹을 쌍둥 자르는 가위를 들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 조금 따뜻해 지기로 한다. 로봇이라도 옆에 두는 게 낫겠지. 그게 내가 사랑하던 사람의 모습을 하고 종종 괴상한 딴짓거리를 하는 기계라면 지루하진 않겠지.
그러면서 한 코씩 글 뜨개질을 했다. 그게 가끔 발동하는 나의 글쓰기다. 어디서 배워먹은 방법이냐 물으면 밑도 끝도 없다고 대답하겠다.
슬픈 로맨스가 되었다가 판타지가 되었다가 하드코어 뼛가루로 묻었다가, 갑자기 아, 이젠 어디로 가지? 그런다. 그런 길 잃음의 모호함은 다른 상상으로 이어진다.
매번 가던 길에서 어물쩡 멈춰 섰다가 막막해서 한 걸음 성큼 가는 옆으路
그 길에서 마음껏 펄쩍 뛰어올랐다가 공중제비를 하러 가면, 假面이 온다.
옆으路라는 길에서 假面을 쓰고 추고 싶은 춤을 신나게 춘다.
결국 사달 四達이 난다.
나를 관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