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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Oct 18. 2024

옆으로 가면

사달과 사달, 四達

라스 폰 트리에의 에피데믹에 나오는 영화감독과 작가가 이야기의 타임라인을 그릴 때 오! 저러는 거구나 했다. 자기들 영화에 직접 나오는 영화감독과 작가가 연신 기괴적으로 낄낄거리다가 끼~익! 끝난다.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타임라인을 그려가며 플롯을 구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다 결국 이 사달이 날 줄 알았다, 진즉에. 


농담처럼 장난처럼 히멀건하게 유희를 탐하다가 갑작스러운 잡스런 재미에 빠지곤 한다. 미어터지는 지구를 살리며 영원히 사랑하게 되는 그와 그녀, 황당무계 과학 무지렁이라는 애칭을 스스로에게 하사한다. 


뭔가 될 듯한 실없는 탄성 속에 견고하게 깔려있던 절망을 보지 못한 거였다. 그런데 나는 절망을 깔고 앉은 그 탄성의 찰나에 세포가 흔들린다. 


출생률과 출산율, 전문가들의 허튼짓 같은 논쟁 사이에서, 언어를 정확하게 써야 한다는 꼬장한 틀이 무슨 의미가 있니 하다가 뾰족해졌다. 아무리 저출산 저출생 외쳐도 저명 외국 학자 하나는 한국을 인구 폭발을 해결하는 열쇠로 보기도 한다. 


나는 헐렁해지는 면적이나 돈다발보다 인구 밀도가 높아져 받는 뜨거운 스트레스에 더 민감한 편이라 문득 글 속에 '가임, 임신 가능성'을 박아 넣은 것이었다. 노란 싹을 쌍둥 자르는 가위를 들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 조금 따뜻해 지기로 한다. 로봇이라도 옆에 두는 게 낫겠지. 그게 내가 사랑하던 사람의 모습을 하고 종종 괴상한 딴짓거리를 하는 기계라면 지루하진 않겠지.


그러면서 한 코씩 글 뜨개질을 했다. 그게 가끔 발동하는 나의 글쓰기다. 어디서 배워먹은 방법이냐 물으면 밑도 끝도 없다고 대답하겠다. 


슬픈 로맨스가 되었다가 판타지가 되었다가 하드코어 뼛가루로 묻었다가, 갑자기 아, 이젠 어디로 가지? 그런다. 그런 길 잃음의 모호함은 다른 상상으로 이어진다. 


매번 가던 길에서 어물쩡 멈춰 섰다가 막막해서 한 걸음 성큼 가는 옆으路

그 길에서 마음껏 펄쩍 뛰어올랐다가 공중제비를 하러 가면, 假面이 온다.


옆으路라는 길에서 假面을 쓰고 추고 싶은 춤을 신나게 춘다. 


결국 사달 四達이 난다. 


나를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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