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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Oct 26. 2024

죽음의 색깔

[영화] 룸 넥스트 도어, 2024,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no 스포일러는 없다]


죽음을 비추는 장면들은 대개 아주 진하거나 매우 흐리다. 특히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그런 극단을 더 부풀리곤 한다. 걱정스럽고 슬프게 고개를 위로 든 표정의 예고편 한 장면을 스치듯 보며, 감독이 빨래 짜듯 뭔가 이면을 보게 하려나보다 했다.


올려다보는데 왜 옆 방일까.


의도하지 않은 듯 숨어있는 은유나 비유를 기대했었다.


짜다가 땅바닥에 떨어뜨린 젖은 빨래, 거기에 붙어버린 세상을 향한 소심한 외침, 같이 뒤틀어 짜며 메시지를 전하려는 답답한 의도로 내 몸도 같이 뒤틀다.


내가 그어둔 선의 끝이 영화의 결말과 같이 이어지는 건 다행이라 여긴다. 과정보다 그녀가 원했던 그 권리와 자신에 대한 존중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게 공감한다.


정리된 방, 책상, 펜을 쥐고 있는 핏기 없는 손, 머뭇거리며 말 끝을 숨기는 그 숨결까지도 열병식 안의 군인들처럼 정확했고 정갈했고 그들의 색깔은 오래 남았다.  


죽음과 가까워지며 살아있는 동안, 안개가 쌓인 듯 흐린 회색의 표정과 아직은 살아있다는 듯 잔 주름 안의 생명이 여전히 끈적하고 안타깝고 회한으로 가득하다.


화려한 빛의 색깔이 고통과 분노와 절망, 바랜 그리움도, 살아있는 것 살만한 세상의 일부라고 속삭인다.


데이비드 호퍼의 People in the sun(1960)이 그녀를 세상의 끝으로 바래다주고, 제임스 조이스의 The Dead(1914)의 한 구절의 읊조림으로 분홍색 눈을 세상에 뿌린다.


His soul swooned slowly as he heard the snow falling faintly through the universe and faintly falling, like the descent of their last end, upon all the living and the dead. - The Dead by James Joyce


그리고 눈이 부드럽게 살포시 전 우주에, 살포시 부드럽게, 마지막 종말을 향해 하강하듯이, 모든 산 자들과 죽은 자들 위에 내려앉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도 천천히 희미해져 갔다. - 죽은 사람들 by 제임스 조이스


두 친구의 다른 낭송이 가슴에 남았다.


희망을 주고 싶은 스러짐의 이면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마지막 순간의 색깔에 대한 회화적 상상을 하게 한다.


그녀가 누워있던 호퍼의 고독이 내게 왔다.



사진 - IMDB, The Room Next Doo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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