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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Oct 11. 2024

깡통 로봇

훈이와 나

평범하지만 새로운 아지랑이가 오르는 듯한 글을 보면 은근한 아름다움에 취한다. 울렁거리는 아지랑이 가락가락마다 고뇌가 느껴지는 그런 글,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는 아름다운 바람 앞에 나는 할 말이 뭔지 생각해내지 못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내 눈에 불을 켠 그 한 문장이 침대 모서리에 단정이 걸터앉게 했다.


'나는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


나는 당신의 그런 글을 계속 읽고 싶다.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는 심연의 공포가 점차 끌어올려지는 두려움이 되었다가 결국 내게 손을 내미는 그런 안타까움, 같이 흐느껴도 좋을 그런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수십여 시간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었던 내 속을 들쑤시며 들어온 것은 몸뚱이에 쌓이는 지방과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아니었다. 되지 못하리라는 말, 못하리라는 공포의 여운을 위장에 가득 채우고 일어났다.


나는 아마도 훈이를 가득 채운 깡통 로봇인지로 모른다. 주전자 코를 하고 세상에 대놓고 고춧가루나 깻묵을 쏘아대고 간장을 뿌린다. 주먹을 꼭 쥐고 깡통으로 위장하고 소심하고 겁 많은 것처럼 보이며 언젠가를 기다리는 걸까. 이미 지난 것들이 재료가 되는 드라마는 흔하다.


나는 언젠가를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감각 폭풍을 뒤적이며 사고하여 정리하며 준비할 뿐이다.


훈이가 빠져나간 비어버린 깡통 속에는 찌꺼기로 남은 나의 혼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탈탈 털어 모두 정리하고 나서 치잇! 성냥 하나를 긋고 싶다.


순간의 나를 태우려 글을 쓴다.

그런 나를 내가 사랑하는 이기심에 글을 쓴다.

문득 머리카락 타는 냄새 같은 지독한 그리움에 글을 쓴다.


그립다.



그림 by yoonasohn, 아크릴 on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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