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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Nov 06. 2024

길 위에서

단 하루

멀어질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고 한다. 만나려 해도 마음의 거리가 낯설게 벌어지며 건조한 바람이 되는 걸지도 모른다. 겹겹의 마음을 당장 들어내 버리고 고의의 상처를 짊어지려 하다가 멈추어 선다.



 

퇴근길로 넘치는 자동차를 뚫고 유턴을 하다가 멈칫한다. 반대편 차선의 마지막 꼬리를 문 차가 앞으로 조금만 더 가주면 좋겠다. 유턴이 안전할 때까지 기다리던지 경적을 울려 좀 움직여 달라고 애걸을 해야 한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중앙선에 차를 걸쳐두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미 빨간 후미등의 축제가 열린 거리에서 조급해봤자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여전히 거리를 두고 삐딱하게 선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의 선을 두고 넘을지 되돌아 갈지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할 때가 있다. 이미 밟아 선 노란 선이 경고를 보내지만 어정쩡하다가 기회를 놓치고 한꺼번에 달려드는 사방의 경적에 눈을 감는다. 귀를 닫는다.

 

꾸역꾸역 가장 오른쪽 차선에 붙어 우회전을 했다. 몰려오는 압력에 밀려 좌회전 차선으로 들지 못했다. 눈은 왼쪽에 처량하게 던져두고 핸들은 우로 돌렸다. 어쩔 수 없이 오른쪽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그런 날들이 있다. 저걸 하고 싶은데 이렇게 가야 하는 날, 액셀을 밟고 싶은데 브레이크에 힘을 주어야 하는 날, 괜찮아 괜찮아하는데도 눈앞이 추상화로 어른거리는 그런 날에는 그냥 직진을 한다. 마음을 기댈 곳이 생각날 때까지 핸들을 수직으로 힘주며 앞으로 앞으로 간다.


길 위에서 갈 곳이 없다. 목적지의 반대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유턴을 하면 된다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방금 전 유턴을 했으면서도 다시 내 방향으로 가기 위해 유턴 차선에 멈추는 것을 하지 못했다. 무엇이 남아 있는 건지 길 위에 마음을 흘리며 달린다.


그러다 문득 멈추었던 곳에 왔다. 얇게 겹으로 그려진 하트 무늬가 짙은 라떼와 따뜻한 스콘을 주문했다. 먹지 않아야 할 것을 적절하지 않은 때에 먹거나 마실 때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는 시간을 감내할 의지를 강하게 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다.


내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부끄러움에 대한 사과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하루다. 그래서 길 위를 한참 헤맸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단 하루 그냥 맘껏 아쉬워하려고 한다.


실수하고 사고 치고 사과하고 아쉽고 부끄러운 날들, 뭉텅 잊고 싶은 날들을 지나며 다시 금세 새로워져야지 한다.


여전히 목적지까지는 멀고 멀다. 러시아워다. 길 위에서 헤매다 카페에서 멈추어 하루를 정리한다.


네비가 허락하는 시간에 다시 목적지를 향해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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