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Aug 23. 2023

그래도 살아지더라

다시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두려움

그럼에도 살아지는 게 삶이더라. 삶아도 삶아도 또 지글지글 삶을게 나오는 게 삶이더라. 


가르치는 사람들이 가지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르친다는 행위와 가치와 깊이에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업 첫날 새벽, 혼자 쭈그리고 앉아, 이번에는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벌써 한 학기를 제대로 깔끔하게 웃으며 마무리하는 상상을 했었다. 꼭 그러고 싶어. 


항상 커다란 긴장과 떨림으로 시작하는 강의 첫날, 강의실 문을 열기도 전에 심장이 터지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내 심장의 시한폭탄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 아닐까, 단 1초도 채 안될 그 순간에 나는 생과 사를 모두 경험한다.


학기마다 다른 분위기, 다른 아이들, 다른 시스템, 다른 반항과 아픔, 아픔이 많아지는 건 싫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더 많이 아파하는 중이다. 두려움을 느낄 만큼 많이 산 건지 두려움을 견뎌내지 못할 만큼 약해진 건지 잘 모르겠다.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것, 메시지로 시작한다. 포기하지 마, 내가 안아줄게.


이하이의 노래 '한숨'에는 내가 필요한, 어쩌면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진심의 위로가 들어 있다.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진 않아, 가끔은 실수해도 돼, 누구든 그랬으니까, 괜찮다는 말, 말뿐인 위로지만.

...

남들 눈엔 힘 빠지는 한숨으로 보일진 몰라도, 나는 알고 있죠, 작은 한숨 내뱉기도 어려운 하루를 보냈단 걸. 이제 다른 생각은 마요, 깊이 숨을 쉬어봐요, 그대로 내뱉어요. 

...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정말 수고했어요.


작곡 위프리키, 종현(JONGHYUN) / 작사 종현(JONGHYUN) / 노래 이하이




슬픈 배경들을 알지 못하더라도 이 메시지 만으로 위로받을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나도 그렇다.


배움의 갈증으로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이들이 줄었어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 차별하는 아이들이 많아져도, 이런 거 꼭 배워야 해요 큰 소리로 반항하는 아이가 있어도, 공황장애 진단서로 결석하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생겨도, 그룹 소통이 안 되는 또는 안 하려는 아이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도 살아내야 한다. 


번역은 반역, 기계와 인간 감성 비교라는 두 가지 주제를 두고 ChatGPT를 이용하여 번역한 노래로 분석 비평을 하며 이하이의 '한숨'으로 첫 수업의 말미를 채웠다. 한 번이라도 더 내 마음이 아이들에 닿도록 '내가 안아줄게요'를 더 강조하면서. 포기하지 마. 


AI는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라는 부분을 번역해내지 못했다. 여러 갈래의 감성을 표현하는 그 말을 기계가 대체 어떻게 번역해 낸단 말인가. '정말 수고했어요, '가 'You've worked really hard.'로 충분한가.


이 첫 그룹 토의로 내 수업의 핵심, 마주침과 위로의 메시지를 깨닫기를 바랐다. 멀치감치에서도 나를 알아들은 아이들에게는 고마워해야 하고, 슬픈 아이들은 등을 한번 더 도닥여주어야 하고, 포기하려는 아이들은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여전히 중도 포기하는 아이들이 생기겠지만 내가 해야 하는 최선에 눈뜨고 있어야 한다. 


직접 마주 보는 눈의 가치는 따질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귀하다. 마주침을 멀리하게 만드는 시스템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나만 고투하는 것일까. 


강의실 문을 와락 열어젖히는 용기로 긴장과 두려움을 묻었던 시간에 감사한다. 크게 한번 숨을 내쉬고 한 발짝 내딛으면 또 그렇게 살아지더라.




주기가 짧아지는 두려움, 하지만 그게 지글지글 삶으며 사는 나의 삶이다. 내가 반드시 살아내야 하는 숙명 같은. 결국은 살아질 것이다.



그림 edith lüthi_Pixabay

#라라크루5기 (2-1) #라라라라이팅 - 결국은 살아질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