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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Nov 24. 2024

하루의 위로

 

뒤집기 기술의 신공을 발휘한다. 


노크하다 지친 영혼을 주워 담아 길을 나선다. 세상 어딘가 희미했던 나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안과 밖을 뒤집어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을 뚫고 나갈 땐 늦은 밤의 아름다운 계획까지 이미 마친 마음이다. 고속도로 위에서 다른 차들과 속도를 맞추며 달리는 새벽이 좋다. 하나같이 폭주다. 


최고의 속도를 바라보며 경쟁하는 시대다.


스팀을 뿜으며 쫄쫄쫄 내려오는 에스뿌레쏘를 바라보며 너도 이렇게 다시 시작이구나 하루를 열었다. 


친절한 사람이 좋다. 눈빛과 웃음이 다르다. 소리가 다르다. 무언가를 파는 사람이면 더 살게 없는지 살피게 되고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면 더 읽고 싶은 게 없는지 뒤적이게 된다. 


미소를 타고 들어오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누군가에 집중할 수 있는 순간들이 귀하다.  


토요일의 서울 거리는 차와 사람과 매연과 열기와 그리고 헉헉대는 숨소리, 지끈거리는 통증으로 가득 차 빈틈이 없다. 길이 집인 양 편안하고 싶지만 차기운 공기에도 아스팔트 열기는 정체된 차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접어야 할 땐 단호하게 한다. 


음악을 끄고 어딘지 다시 둘러보고 어딜 가야 하는지 다시 생각한다. 왜 새벽에 나왔는지 무얼 하고 싶었는지 어디쯤에서 하루를 마치고 싶었는지 지금 몸과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를 차갑게 떠올리며 도미노의 첫 타일을 과감히 넘어뜨린다. 


다시 쌓아야 한다. 


몸과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 모든 구멍이 막혀 풍선처럼 높아지는 압력을 어쩔 수 없을 땐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다. 과. 감. 히. 그런 날도 있다. 그렇게 하나씩 정리되는 하루다. 


원점을 지나 다시 여행자 모드로 외출했다가 알렉산드리아와 로이를 만났다. 미장센의 경이, 메타포, 챨스 다윈, 그리고 나비... 



너무 익어 할인하는 바나나 한 송이를 샀다. 오래전 양도해 버린 주방에서 아무도 없는 집 안을 가득 채우는 바닐라 향의 따뜻한 수프를 만들어야지. 


마음에 담아 두었던 꾸깃한 소심함을 버리고 목소리를 기억해 내며 나를 달래 봐야지. 


어차피 지금 떠날 수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볼 거야. 


내가 신기해하는 배꼽이 있는 그 배 위에 아름다운 나비를 그려 줄 거야.


빛처럼 나를 지난 이 영화가 끝자락 가을과 겨울 한복판에 나를 제대로 서 있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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