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동의보감 탕액편을 보면 고사리를 궐채蕨菜라고 표기했다 벌이 사라지고 궐로 자리잡았다
벌虌
16세기 훈몽자회에서는 벌이라고 썼는데 복잡한 고사리 잎의 형상이다 거북 구龜와 비슷하게 생겨서는 너무 쓰기 어려워 이내 사라진 것 같다
장손의 대를 잇기 위해 어린시절 할머니는 손주에게 고사리와 율무차를 권하지 않은 덕분에 나는 고사리 맛의 매력을 모르고 살아 왔다 비빔밥을 먹을 때에도 고사리는 골라내 미사리로 던져버리고 손님접대로 율무차가 나오면 입술에만 대곤 했다 그닥 무관심한 정력을 위해서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