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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Nov 23. 2024

숲의 은둔자

0895

학명으로는 독수리의 날개인데 분류할 때에는 양의 이빨인 고사리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꽃이 없어도 번식하기를 공룡시대부터 그래왔다 꽃이 없어서 멸종하지 않는 거다 숲의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은둔하며 성실하게 존재해 왔으며 그것이 매력이다


익히지 않으면 독이 되고 삶으면 약이 되는 운명이다 프타퀼로사이드 때문이다 백이 숙제의 죽음은 이 독소 탓이 아니라 영양부족인데 방광암 사망으로 소문이 나 정력감퇴식물로 와전되었다


잎의 모양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꽃의 부재가 잎으로 모두 쏠린 것일까 초식동물들마저도 귀신같이 고사리잎을 피해 먹는다 예쁜 버섯에 독이 있듯이 예쁜 잎에도 독이 있음을 알아 본다


코끼리는 코가 손이고

고사리는 잎이 손이다


아기의 손을 고사리에 빗댄다 유독 곱다 부드럽다


궐蕨


한자로 쓰니 고사리 잎이 글자 안에 박혀 있다

17세기 동의보감 탕액편을 보면 고사리를 궐채蕨菜라고 표기했다 벌이 사라지고 궐로 자리잡았다

벌虌


16세기 훈몽자회에서는 벌이라고 썼는데 복잡한 고사리 잎의 형상이다 거북 구龜와 비슷하게 생겨서는 너무 쓰기 어려워 이내 사라진 것 같다


장손의 대를 잇기 위해 어린시절 할머니는 손주에게 고사리와 율무차를 권하지 않은 덕분에 나는 고사리 맛의 매력을 모르고 살아 왔다 비빔밥을 먹을 때에도 고사리는 골라내 미사리로 던져버리고 손님접대로 율무차가 나오면 입술에만 대곤 했다 그닥 무관심한 정력을 위해서도 아닌데


근거가 없는 정보도 자꾸 들으면 근거가 창조된다


고사리는 제철이 따로 없다 사시사철이 자기 세상이다 열매도 맺지 못하면서 포부가 당당하다


오래 버틴 것들은 이유가 있다 유연하거나 복잡하지 않거나 치명적인 강함을 숨기고 있거나


그 매력과 별남을 지닌 고사리가 오늘의 탄생화다


스스로 꽃은 피우지 못해도 탄생화의 대열에 낀 고사리의 당당함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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