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Nov 23. 2024

옳고 그른 것

사백 마흔아홉 번째 글: 절대적인 건 없는 세상입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소리소문 없이 살아가는 게 제일 줗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숱한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굳이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지내며 살아오진 않았습니다. 다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 역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저는 요란한 삶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태생적으로 그런 건 아닌 듯합니다. 살면서, 아니 어쩌면 살기 위해서 바뀐 것인지도 모릅니다. 원래 저 많은 사람들과 모여 함께 뭔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기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저의 인성에 대해 제가 가타부타할 수는 없으나 단체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제가 피해를 줄 만한 유형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화두는 '1인의 삶'입니다. 예전처럼 더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을 사람들이 원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영역에 들어서는 원척적으로 봉쇄는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가장 최소한의 교류만 유지한 채 지냅니다. 그 나머지의 시간과 에너지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쏟아붓곤 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요즘과 같은 시대에 가장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올 한 해, 학교에서 학년 부장교사 역할을 수행하며 느낀 바가 참 많습니다. 이미 시대가 변해 버렸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세상이 변하고 있을 만큼 모든 가치와 기준이 흔들리고 있는 세상이 오고 말았습니다. 진정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의 변화인지는 모르겠으나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최소한 도태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어도 그는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합니다.


외로운 게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만,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나이 차이가 적지 않은 MZ 세대의 선생님들과 잘 지내보려는 노력도 한낱 가당치 않은 욕심이라는 걸 몸소 확인한 한 해였습니다. 저는 저 나름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에게 결례를 범한 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들과 전혀 소통을 못 하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교사로서의 최소한의 양심 따위를 운운하는 것도 고리타분하고 가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제가 알아왔던 그 모든 가치와 직업적 윤리의식들이 한낱 쓰레기 같은 생각이었다는 게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는 건 그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은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이제 더는 완전무결하게 옳은 건 없는 세상입니다. 상식과 경우에 부합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옳지 않은 것이 되고, 옳다고 믿는 것을 한 번이라도 강조했다가는 시대의 변화도 못 읽는 한심한 꼰대가 되어 버리는 세상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어딜 가든 환영받는다고 했습니다. 저보다 삼십 년은 더 살았던 사람도 그 오래전에 체득한 걸 저는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결국은 1인 생활 시대가 정답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매거진의 이전글 숲의 은둔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