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by 수의서재

미국으로 갈 땐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 지독히도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던 희서였다. 독하게 공부하며 살았던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그 말미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 정착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었다. 그 중심에 준하가 있었다. 진저리 치며 피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준하와의 이틀은 짧았지만 영원을 꿈꿀 만큼 귀한 시간이었고 희서의 삶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일생의 사건이었다.


연구를 위해 미국에서 지원했었던 한국초등학교들 중 공립과 사립 각각 한 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일 년간 연구데이터를 쌓을 작정이었다. 은사님 덕분에 모교인 대학에서 강의도 하게 되어 빠듯하긴 하지만 한국에서 경제적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것들은 하나도 쓰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 미국으로 가기 전 모두 팔아 은행에 넣어둔 현금으로 서울 한 복판에 집 한 채는 살 수 있었지만 희서는 어떻게든 스스로 독립하고 싶었다. 유산은 유산일 뿐 그녀의 재산이 될 수 없는 아버지가 남긴 삶의 흔적이었다.


미국에서 일하며 벌어둔 것으로도 서울 근교에 작은 원룸을 얻을 수 있었다. 꽤 쾌적하고 살기 좋은 지역인 데다 희서가 일할 공립초등학교 주변이라 통근하기에도 좋았다. 순조롭게 한국에서의 삶이 하나씩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쯤은 미주랑 동후, 준하와 만나 카페 거리에서 차를 마시며 얘기하거나, 술 한잔씩 하며 주말의 여유도 즐기곤 했다.


미주는 여전히 결혼 생각이 없이 혼자 즐기는 인생을 살고 있었고 동후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성당에서 봉사하면서 사제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제가 되려면 새로운 과정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여전히 갈증 하는 표정들이 무엇 때문인지 몰랐지만 스스로 결정한 길이니 책임지면 될 일이었다.


동후가 준하를 바라보는 눈 빛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깊고 슬펐지만 희서에게는 그런 동후가 습관처럼 익숙했다.


준하의 두 번째 인턴 경력은 실제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서 만족한다고 했다. 독창적인 디자이너로서 조금씩 인정받고 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업계에서는 햇병아리였지만 준하의 디자인이 꽤 이름 있는 공모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신입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잘 다지고 있었다.


한국에 온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서로 바쁜 통에 준하와 단 둘이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삶 자체를 활기차게 했다. 매일매일 톡을 하거나 전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벅찼다. 이십 대의 마지막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온기로 충만한 시간들이라 생각했다.


그때 미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회사에서 이벤트에 당첨되어 글램핑 2박 3일의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다면서 넷이서 가면 어떻겠냐고 했다. 우린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이야기하며 우정을 쌓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산을 마주 보며 캠핑을 하는 건 낭만적이었다. 숲이 주는 공기를 그대로 깊이 들여 마시고 숲 길을 걸으며 힐링하는 여유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미주와 동후가 바비큐 준비를 하는 동안 희서는 준하와 잠시 산책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둘 만의 시간 이후 정말 오랜만이었다. 눈을 간간이 서로 마주치며 걷는 숲길마다 설렘과 흥분이 퍼지고 있었다.


"궁금했지?"


준하가 갑자기 묻는 말에 희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무엇에 대해 얘기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자주 연락을 하면서도 그 누구도 그 빨강과 흰색의 나이트 슬립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여전히 희서의 서랍 깊숙이 나란히 놓여있는 두 개의 상자였다. 여전히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채로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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