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full of dragons
누군가 내게 그랬다.
'삶이 드래곤 같아서...'
우리 삶이 드래곤 같다는 건지, 살아보니 드래곤 같더라는 건지, 마주한 방향에 멀거니 서 있는 나를 향한 말인지, 드래곤 눈에는 드래곤만 보여서 한 말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상관없었다. 드래곤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심장이 펄떡이는 것을 느꼈으니까.
드래곤의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내게 겨누고 한 말이래도 괜찮다. 나는 부조리에 분노하고 세상에 전혀 친절하지 않은 XX 유전자다. 어떻게든 견뎌보려다가 내 꾀에 넘어가 나자빠지는 일이 흔해도 어느새 일어나 어지간히 포기를 못하는 속성을 가졌다.
매일 부글부글 끓다가 등지고 앉았다가 궁금해 죽는다.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버리면 좋을 텐데 그 벼랑에서 흔들거리다가 다시 돌아서 세상과 마주한다.
삶은 드래곤, 맞다! 뜨거운 세상에서 푹 지근하게 더 삶아지라는 말로 이해하겠다. 그래서 열심히 나의 드래곤을 훈련시키고 있다. 꿈꾸는 드래곤...
아름다운 끝으로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날에 대해 이런저런 철학자의 글을 읽고 있다. 여전히 내게 꼭 들어맞는 퍼즐 조각을 찾을 수 없다. 다시 복습한다.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름다운 골목 끝에서 황홀하게 열리는 문이어야 한다.
그곳을 향해 걷다가 문득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드래곤이고 뭐고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무미건조한 멈춤에 여태껏 살아온 시간이 한꺼번에 어둠 속에 묻히기도 한다. 지속의 이유가 없을 때, 하염없이 정지된 시간 속에 남아 있는 온기로 감지할 수 있는, 살얼음 같은 아름다움에 기꺼이 산다.
연극이 끝나면 무대 뒤에 홀로 남아 몰아치는 허무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시간,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공허와 그 뒤에 여전히 축축하게 남은 얼마간의 미련, 삶으로 점화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마지막을 향해 일어선다는 핑계의 누추함을 알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풀어두지 못한 내 안의 꿈틀거림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삶이 드래곤 같아서...'
아직은 세상을 향해 서 있어야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