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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거지

by 희수공원

새로 생긴 말들이 반짝 등장했다 사라질 것 같다가 자리를 틀고 주저앉기도 한다. 사회가 그렇게 고착되는 중이라는 징조다. 경제, 소비, 과시, 허영, 불안, 공포를 깔고 앉은 여러 비속어를 마주한다.


거지 같은 세상이라고 하면서도 굳세게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 순간 타인에 의해 거지가 되었다가 세상을 거지로 만들었다가 스스로 거지가 되도 한다.


나도 거지 너도 거지 한 거지씩 하면서 사는 게 그런 거지 씁쓸하게 자조한다. 내가 되어 본 거지도 만만치 않고 될 수도 있을 거지도 있을 테니 아마도 나는 거지계를 주름잡는 대왕 거지인지도 모른다.


비논리적 글을 쓰면 문법 거지

말이나 발음이 어눌하면 발음 거지

공공장소 기본 없이 무례하면 매너 거지

이기적이고 타인에 피해 주면 인성 거지

분위기 파악 못하고 무신경한 눈치 거지

소통 못하고 관계 유지 관심 없는 사회성 거지

촌스러운 옷차림에 신경 안 쓰는 패션 거지

존재감 없이 투명 셀로판 같은 인기 거지

감정 표현 서툴거나 과도하면 감성 거지

입시 취업에 스펙이 부족하면 스펙 거지

지나치게 칭찬 원하는 칭찬 거지

자기 밥 다 먹고 남의 것 탐내는 급식 거지

수업 거의 안 빠지고 출석하면 개근 거지

남의 것 지나치게 원하는 플렉스 거지


지나쳐도 거지, 부족해도 거지다. 내 눈에 지나친데 네 눈엔 부족하면 우린 어디쯤에서 서로를 덧내고 있는 중인 걸까.


나는 오늘도 문법 거지, 발음 거지가 되었다가 눈치 거지 사회성 거지로 슬쩍 밀려난다. 패션 거지니 당연히 인기 거지가 되었다가 그 옛날 개근 거지였던 초등학생으로 돌아갔다가 눈물을 머금은 감성 거지로 돌아온다.


아직은 매너 거지나 인성거지, 급식 거지나 플렉스 거지가 되어 본 적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어떤 순간 나는 인성 거지였을 수도 있고 칭찬이나 플렉스 거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매우 주관적인 사회에서 개인, 개별화에 익숙해지며 조용히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날아온 찬란한 거지의 다양한 프레임에 공황이 올 지경이다. 꽤 단단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나도 흔들거리는 멘탈에 가슴이 철렁한다.


한창 이쁘게 자라나야 하는 순수한 아이들, 정체성을 찾아가는 경계의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게 어쩜 이렇게 어려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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