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으로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힘

by 희수공원

사람과 사물이 온통 섞여 돌아다녔던 길이 좋은 기억에 없는 날이 있다. 무슨 무슨 건축상을 받았다는 그 건물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겉만 후루룩 돌다 떠나왔다. 하얀 곡선이 우아하다.


테이블 사이가 널찍한 근사한 카페에서의 기쁜 흥분도 오래가지 않는다. 한 공간에 목소리 큰 사람이 정치이야기를 들으라는 듯 떠드는 통에, 들고 있던 도자기 찻잔을 더 꼭 잡았다. 자리를 옮긴다.


소모적인 뜨거운 소리와 몸짓에 너덜 해지느니 차분히 내 공간에 들어앉아 글을 쓴다. 나를 향해 오밀하게 앉은 낙타와 토끼와 강아지 인형과 대화를 하는 게 더 나답다는 걸 안다.


몽골에서 온 낙타에는 주름이 자글한 할머니의 뻗은 손이 보인다. 내가 다녀온 나라도 아닌데 전해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들판 위의 대소변이 건조한 바람이 되고 목욕을 며칠 하지 않아도 별달리 불편하지 않은 곳, 그녀는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내 속에 뭉쳐진 위선을 읽었을는지도 모른다. 넌 엉덩이 까고 그럴 수 없을걸, 그러면서.


정말 그럴까.


토끼가 입은 주홍색 털셔츠에는 두 글자 사이에 선명한 하트가 있다. 하트가 유행인 시대라 손가락 두 개로도, 두 사람의 낀 팔짱으로도, 입술로도, 글자로도, 납작하게도, 부풀려서도, 어디에나 하트 충만이다. 두 사람은 그 가운데 하트만큼 떨어져 더 외로운 건 아닐까. 하트는 마음에 넣고 같이 붙어 있으면 좋을 텐데.


가느다랗고 약한 다리 때문에 토끼에게 턱을 기대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강아지, 항상 가장 짠한 눈길이 간다. 어떻게 자세를 바꿔주어도 눈에 가득한 잔 슬픔들이 마치 세상 눈물을 다 품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겠어.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그대로다. 누군가 기쁜 마음으로 바라봐주길.


내일은 세 인형들 뒤에 떡 버티고 선 해바라기 그림에 대해 생각해야지. 친구의 어머니께서 취미로 그렸다는 그 해바라기를 오래 바라보며 살았네. 멀리멀리 흐려지는 꽃잎과 줄기 사이로 바람이 느껴지는 그 해바라기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으며 살았지. 그렇게 꽃으로부터 이어지는 친구의 뒷모습을 기억해 낸다. 그녀의 술 취한 눈물에 나의 고독마저 들통났었던 그 시간, 아름답다 소리 낸다.

온통 받기만 한 삶, 낙타도 토끼도 강아지 인형도, 해바라기도, 꽃잎 사이를 휘도는 바람도. 친구의 눈물로부터 받아 냈던 나 자신까지, 주었던 기억의 빈약함에 가만히 숙연해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저렇게 내 삶에 들어앉은 퍼즐들이 쓰고 싶은 글로 모이고 생각을 채우며 자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