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을 진짜 김사슴으로 알고 계신 분도 있어요” 이름이 독특하다는 말에 그녀는 웃으며 운을 뗐다. 김사슴은 김정원 씨(33)의 부캐 명이다. 직장인 김정원이 본캐(본 캐릭터)라고 한다면, 퇴근 후 김사슴은 그의 부캐(부캐릭터)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서는 ‘부캐 만들기, 퇴근 후 사이드 프로젝트 하기’등의 이름으로 회사가 아닌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유행이다.
부캐의 세상에도 계급이 있다면 그녀는 중상(中上)쯤 될까. 부캐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전인 2017년부터 현재까지 크고 작은 프로젝트로 족적을 남겨왔으니 말이다. 그녀는 부산 연극 잡지 ‘파이플(PIEPL)’를 시작으로 팟캐스트 ‘서른인데 뭐하지’, 사이드 프로젝트 커뮤니티 ‘부캐의 탄생’ 등을 운영해 온 6년 차 프로 부캐 활동가다.
부캐 '김사슴'으로 활동 중인 김정원씨
부산연극 잡지 파이플(PIEPL)
부산연극 잡지 파이플(PIEPL)은 ‘Piece of Play’의 줄임말이다. 부산 연극을 조각 케이크처럼 쉽고 달콤하게 소개한다는 뜻을 지닌 계간 잡지다. 어려운 담론이나 평론 대신 연극과 희곡에 대한 리뷰와 부산 연극인 인터뷰를 주로 담았다. 주로 주말이나 퇴근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부캐 활동. 어려움은 없었을까? “잃을 것이 없으니 한번 해보자는 후배의 말에 가볍게 시작했어요” 그녀는 막중한 책임감보다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마음이 오히려 <파이플>을 4년간 이어 올 수 있었던 기묘한 추진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직장인 ‘김정원’에서 퇴근해 부캐 ‘김사슴’으로 다시 출근하는 삶. 그녀에게 부캐 ‘김사슴’은 어떤 의미일까. “지역 라디오 게스트 출연, 독립잡지 오픈토크 연사, 로컬 잡지 인터뷰이, 축제 부스 운영, 청년지원사업 선정 등 본캐 직장인이었다면 얻을 수 없는 순간을 경험했어요” 특히 ‘김사슴’으로 불러주는 새로운 인연들은 큰 자극제가 되었고, 인생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고 한다.
부산연극잡지 파이플(PIEPL)
나만의 부캐 만들기, 쉽게 도전하는 법
어떻게 하면 나만의 부캐를 만들 수 있을까? 노하우를 물었더니, 김정원 씨는 꿈꾸고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가 있다면 작은 단위로 쪼개서 일단 시작해보는 걸 추천했다. 비건 문화와 관련된 커뮤니티를 꾸려보고 싶다면 관심사가 맞는 주변 지인과 소규모로 운영해보는 거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이 경험을 토대로 외부로 사람들을 모집하여 커뮤니티 규모를 확대해갈 수 있다. 만약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일을 제쳐두고 사이드 프로젝트에 몰두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고 조언했다. 다만 회사의 업무와 연계된 사이드 프로젝트를 선택한다면 오히려 회사 안팎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내 돈 들이지 않고 사이드 프로젝트하는 법
김정원 씨는 최근 5년 사이 부산 청년의 활동을 지원하는 공모 사업이 많이 생겨났다고 귀띔했다. “저는 ‘부산문화재단 생애 첫 창작 지원 사업’, ‘부산인재평생교육원 옹기종기 커뮤니티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되기도 했어요” 그 외에 클라우드 펀딩도 있다. 그는 지원사업에 선정될 경우, 추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 홍보 효과 및 네트워크 형성도 할 수 있다며 청년들의 지원사업 참여를 적극 권장했다. 관련 정보는 부산 대외활동 홈페이지나 부산시 청년 지원 센터 홈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다.
부산연극잡지 파이플(PIEPL) 텀블벅 기획전 및 청년커뮤니티 사업 옹기종기 참여
마음은 혼자서, 실행은 다 같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마음은 혼자서, 실행은 다 같이’ 하는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낯선 이름 앞에 홀로 서 있으면 한없이 막막하다. 몸은 하나고 나의 생활을 지속하는 중에 프로젝트를 온전히 소화하기 위한 물리적인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애초 떠올렸던 기획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이 생겨나 서로 만나고 이어지면서 지역 내 느슨한 연대가 형성되면, 더 많은 프로젝트와 기회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새로운 기회가 넘쳐 나는 부산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