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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Sep 19. 2018

카카오톡 메시지 삭제 기능이 살린 개복치 직딩의 하루

출근길 개복치와 탈룰라급 메시지 삭제의 콜라보

아침부터 조금 이상한 날이었다. 분명 아침엔 오랜만에 가뿐히 일어나서 상쾌하게 준비를 했었다. 음 이번주는 추석전 주라 그런가 체력도 잘 버텨주네? 화요일이라도 나름 괜찮군! 하면서 무척이나 당당하게 집을 나섰던 나였다. 


그런데 사실 강남으로 향하는 직장인의 출근길이 나의 좋았던 기분을 가만 내버려 둘 만큼 순탄할 리 없다. 출근길 매일 건너는 동호대교는 유독 차가 많았고 출퇴근길엔 특히나 더더욱 연약하고 예민한 나의 기분은 가속도를 내며 곤두박질 치고 만 것이다. 기분이 급 다운된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아 오늘 정말로 돌연사하고 싶다'를 되뇌고 있었다. 

글쎄 이유를 찾자면 여럿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 이야긴 이러하다.


일단 사고로 인해 출근길이 평소보다 막혔다는 것. 그래서 초초하게 길을 내다 보는 와중에 동호대교 중간 쯤에서 1차선 도로 한쪽 방향으로 위험하게 걸어 가는 빨간 투피스 정장의 여자분을 보았던 것. 그래서 저 분한텐 무슨 사연이 있어서 지금 대교 한 가운데 계신거지? 위험한 건 아닌가. 잠깐 고민하다가 무라카미하루키의 소설 1Q84가 생각 난 것. 그 소설의 시작이 이런 비슷한 장면이어서, 뭔가 오늘 분위기가 이상한 게 하루키 소설스럽다 싶었던 것. 아 그 작가 책 예전엔 꽤 재밌게 읽었었는데 요새 다시 읽으면 좀 시대착오적인 것도 많아서 그때만큼 좋지도 않겠지? 하는 생각에 괜히 조금 씁쓸해진 것. 그러다가 책이나 읽어볼까 하고 매일 챙겨오는 편인 책을 꺼내려 하는 데 하필 그날 책을 깜빡한 것. 그건 어제 맨 숄더백이 아닌 연보라색 크로스백으로 바꿨기 때문인 것. 그래서 크로스백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어깨에서 크로스로 걸린 가방끈에 그만 볼록 나와있는 내 뱃살을 발견한 것. 그러다 그날 아침 마침 헬스를 다니다 PT쌤과 썸 청산 연애 시작! 을 했다는 친구의 달달한 카톡이 기억난 것. 그래서 나도 이제 운동을 해야 하나 역시 식단조절도 시작해야하나 이게 나잇살인가 피할 수 없는 직장인 살인가 하면서 우울해진 것이다. 

읽다가도 숨이 찰 만큼 송구하게 길어진 설명인데 결론만 봐도 된다. 결론을 요약하자면 실은 출근길에선 어떤 특별한 이유따위 없어도 기분이 3초내에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소한 생각들도 쉽게 꼬리를 물고 예민한 고라니처럼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이니까. 모든 궁극적 원인은 바로 회사 그 자체인 것이다. 


어쨌건 이런 초예민의 상태로 돌연사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나는 출근길을 견뎌내며 회사로 향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막상 또 회사에 와서 내 자리에 앉으면 정신 없이 시간은 또 잘도 흘러 갔다. 그런데 도대체가 시계가 멈춘걸까 의심이 될 무렵, (이건 개인차가 좀 있는 직장인 마의 구간인데 내겐 3~4시 경이 그렇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시간이 찾아왔던 거다. 


'아 너무 졸려 집에 가고 싶어 정말 집에 가고 싶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 지 졸려 조올 려 지짜 조올라 졸려'


뭐 이런 생각밖에 안드는 시간. 눈의 무게를 지탱하는 건 양심, 그리고 그와 함께 남아 있는 미세한 정신력으로 모니터를 애써 응시하려는 노력으로 최소 20분정도는 버텨야 하는 마의 구간. 하필 그때동료 에디터 숙희의 카톡이 떴다. 


주로 업무 관련 소통도 카카오톡 메신저를 이용하는 우리 회사는 본인이 제작한 콘텐츠가 업로드까지 완료되면 링크와 함께 단톡방에 공유한다. 그래서 업무적 목적으로 인해 단톡방은 여러개가 있는데 에디터들만 모인 방(별별 얘기를 다 해도 괜찮은 방), 영상작업자까지 모인 방(여기도 괜찮은 방), 에디터+영상작업자+팀장님까지 모두 있는 방(진짜 진짜 대 조심해야 하는 방) 등등. 뭐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앙우앙우앙

숙희 에디터의 카톡은 콘텐츠 업로드 후 링크를 공유하는 메시지였다. 어디 볼까? 하면서 눈 비비며 카톡을 확인하자 공유된 링크와 함께 콘텐츠를 설명하는 텍스트에서 어쩌고 저쩌고 '집에 가고 싶은~'을 읽을 수 있었다. 


당연히 나는 에디터만 있는 방인 줄 알고, 나도 모르게 "아 집에 가고 싶다ㅠㅠ" 를 썼고 누구보다 빠르게 엔터키를 눌렀다. 정말로 집에 가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곧 숙희 에디터에게 개인 톡이 왔고! 나는 화들짝 놀라 바로 빠르게 메시지 삭제 버튼을 눌렀다. 다그닥다그닥 다급하게 내 실수의 메시지가 빠르게 올라갈 수 있도록 큰 짤까지 올려주는 배려심에 감격했다. 나는 최대한 어색하지 않으려 노력한 탈룰라급 변신의 발랄한 응답까지 추가했다. '우앙' = 콘텐츠 정말 재밌고 신선하군요! 저도 쌩쌩하고 발랄하게 일하고 있음요! 하핫!

회사 톡 실수방지 준비물 : 팀플레이 가능한 동료

카카오톡 삭제하기 기능이 처음 생겼을 땐 삭제한 흔적이 남는 것에 약간 불만과 아쉬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로 회사 톡에서 실수를 하고 사용해보니 정말로 유용하고 고마운 기능이었다. 그 스릴과 거기서 오는 작지만 소듕한 고마움은 마치 오늘 하루 나의 알 수 없는 예민도까지 좀 잠재워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출근길 돌연사를 꿈꾸던 나는 약간의 스릴과 함께 오늘도 버텨 냈다. 


'삭제된 메시지 입니다'가 보여주는 흔적 정도면 어떤가. 원래 썼던 말대로 보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면 충분하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단톡방에서 나의 이상한 말 실수가 조금이라도 덜 읽혔을 때 삭제할 수 있다는 것. 흑역사의 크기를 조금 이나마 줄일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기능이었다. 뭔가 허점이 많아 보이는 기능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 지는 순간이었다. (문과가 뭘 안다고ㅠㅠ) 어쨌든 정말로 고맙습니다 카카오...


아니 물론 되도록이면 쓰지 않아야 할 기능이겠지만. 그래서 최후의 기능이겠지만... 이렇게 제대로 사용해 본 카카오톡 메시지 삭제 기능은 앞으로도 꽤 요긴하게 쓸 것 같다.  


그리고 팀플 좋았던 숙희 에디터는 내게 조심해야 할 단톡방엔 빨간 경고의 배경을 해 두라고 조언했다. 이건 그녀가 공유해준 배경들이다. 


여러분도 주의하세요...단톡방 말조심


조심해야 하는 카톡방들의 배경은 소 잃고 단톡방 고치는 기분으로다가 싹 한번 변경해 두어야 겠다. 자나깨나 말조심! 조금은 정신 없고 예민하게 시작되었지만, 나의 실수를 빠르게 발견해주고 예방책까지 알려준 합 좋은 동료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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