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와 네버랜드

제임스 매튜 배리, <피터팬>

by HANA




우리 역시 그 곳에 간 적이 있다.

이젠 더 이상 그 곳에 갈 수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제임스 매튜 배리, <피터와 웬디> 中



네버랜드. 모험과 동화가 가득한 환상의 나라. 날마다 신비한 일들이 일어나고, 언제나 즐거운 상상으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꿈결 같은 세상. 네버랜드는 아이들의 꿈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섬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전부 약속이나 한 듯, 그곳의 존재를 알고 있고 밤마다 그곳에 대한 꿈을 꾸곤 한다. 물론 어른들은 그곳에 갈 수가 없다.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가는 것인지, 심지어 그곳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어른들은 확신할 수가 없다. 네버랜드는 아이들의 머릿속을 그린 지도에서나 찾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년, ‘피터팬’이 살고 있다.








피터팬 증후군


지금부터 깊숙이 파헤쳐 볼 주인공이 바로 이 ‘피터’라는 아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피터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다.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사실, 모든 아이들이 네버랜드를 꿈꾸고, 그곳에 갔다 온다. 그러나 그들은 네버랜드에 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웬디와 존, 마이클, ‘잃어버린 소년들’ 역시 결국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네버랜드를 떠나왔다. 슬프게도 ‘네버랜드’라는 그 곳은 한 때 우리에게 존재했던 곳이지,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곳은 아닌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된다. 그러나, 피터는 모두가 네버랜드를 떠나갈 때에도 떠나지 않고 그곳에 남는다. 복잡하고 틀에 박힌 따분한 일상을 사는 어른들을 비웃으며, 자신은 결코 그런 어른이 되지 않기로 한다.



영원히 아이로 남으려는 이 피터로부터 ‘피터팬 증후군’이란 용어가 파생되었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83년 미국의 심리학자 댄 카일러 박사로, 그는 피터팬 증후군을 ‘육체적으로는 성숙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로 남기를 바라는 심리’로 정의했다. 이 증후군을 갖는 사람은 시기에 맞는 자신의 발달 과업을 이루기를 미루고, 과제에 부딪치면 피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성과의 관계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 채 심하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대개 부모와의 불화, 개인적으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무력감, 사회적으로는 치열한 생존경쟁, 불신이 가득한 사회적 분위기 등을 원인으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부분일 뿐이고, 인간 내부로 들어가 좀 더 깊은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을 ‘성’에 대한 욕구로 보았으며, 이런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이자 욕망은 언제나 무의식에 내재하여 있다. 인간의 성적인 욕구는 ‘리비도’로 나타나는데, 리비도는 인간의 신체 각 부위별로 옮겨 다니며 각 욕구를 추구한다. 프로이드는 리비도의 이동에 따라서 인간의 발달단계를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순서대로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생식기가 되겠다. 그 중에서 인간이 세상에 존재를 알림과 동시에 곧바로 들어서게 되는 시기가 바로 ‘구강기’이다. 구강기에는 리비도가 입 주변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 아이들이 세상과 타협하는 행위는 바로 ‘빨기’이다. 생존을 위하여, 아니 자신의 성적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엄마 젖을 빤다. 또한, 모든 물건들을 다 입으로 가져가서 본격적으로 빨기 시작하며, 그들은 ‘빨기’를 통해 세상을 탐색하고 이해하고 나름대로 적응해나간다. 구강기는 인간이 세상과 마주하는 첫 번째 관문인 것이다. 게다가 엄마의 젖을 빠는 행위를 통해, 엄마에게서 욕구를 충족 받고 엄마와의 끈끈한 신뢰가 생기는 시기이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인간관계에서 쌓인 신뢰성은 결국 앞으로 맺어나갈 세상과의 신뢰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발달심리학자 에릭슨은 프로이드의 심리성적 발달단계에 좀 더 살을 붙여, 인간의 발달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보아 각 발달단계마다 달성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였다. 흥미롭게도, 구강기에 달성해야 할 인간의 발달과제는 ‘신뢰성’이다. 엄마와 아이의 깊은 정서적인 유대를 나타내는 ‘애착’ 역시 이 시기에 형성된다. 보울비는, 자신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 엄마에게 보호받기 위한 신호를 보내게 되는데 이를 ‘애착행동’이라고 하였다. 내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엄마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 애착행동을 하면, 엄마는 나에게 바로 달려와 줄 수 있는가에 대해 아이들은 끊임없이 도식을 쌓게 되고, 엄마와의 상호작용이 잘 이루어지면 안정된 애착관계가 형성된다. 엄마의 일관된 행동에 아이는 안정을 느끼고 신뢰성을 쌓게 된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갖게 되는 관계로, 그래서 엄마의 품이 인간의 원초적인 고향이자 그리움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무의식에는 항상 ‘모정’에 대한 갈망이 있으며, 이는 인간 초기에 엄마와 맺었던 깊은 관계가 한 몫을 한다고 본다.



피터팬 증후군은 이런 ‘모정’의 결핍에서 발생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모정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고 앞서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그리움일 뿐 그곳에 정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피터가 네버랜드를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엄마에 대한 지나친 그리움과 갈망으로 다음단계로 나아가질 못한다. 모정의 결핍은 엄마와 아이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맺지 못했을 때 발생하며, 당연히 이 둘 사이에 신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기는 바로 프로이드의 발달단계에서 ‘구강기’에 해당되는 시기로 이 때에 지나친 만족이 일어나거나, 혹은 지나친 결핍이 일어났을 때 피터팬 증후군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결핍과 무한한 그리움, 욕망




옛날엔 나도 우리 엄마가 날 위해 언제나 창문을 열어둘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난 밖에서 오래오래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갔지. 하지만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어. 엄마가 날 까마득히 잊어버린 거야.

- 제임스 매튜 배리, <피터와 웬디> 中



피터는 어른에 대한 혐오감이 있었지만, 엄마에 대한 기억도 그리 좋지는 않은 듯했다. ‘웬디’와 ‘피터’가 처음 만났을 때, 웬디는 혼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피터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엄마를 잃어버려서 울고 있니. 이에 피터는 발끈하며 아니라고 하며 엄마가 뭔지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후에 네버랜드에서 웬디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피터는 귀를 틀어막고 있다가, 어느 날 그는 ‘엄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꺼낸다. 엄마란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따뜻하고 상냥한 사람이 아니라고. 따뜻한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거짓된 기억이고, 그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그는 엄마를 꿈꾸고 그리워하는 웬디와 아이들을 비웃곤 했다. 피터의 엄마에 대한 ‘불신’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피터팬>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켄싱턴 공원의 피터팬>에서 피터는 새와 요정에 둘러싸여 신비한 삶을 사는 아기로 등장한다. 모든 아기들은 처음엔 새에서 태어나며, 새에서 점차 아기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래서 아기들은 새였을 때의 기억을 지우지 못해 날개는 없지만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한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을 날 수 없게 되지만 말이다. 바깥세상에 호기심이 많았던 피터는 어느 날 하늘을 날아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집을 나오게 된다. 그리고 켄싱턴 공원으로 가서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요정들의 섬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요정들의 섬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창문을 열어두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엄마는 창문을 꼭 걸어 잠근 채 다른 아기를 품에 안고 잠들어 있었다.

네버랜드는 아이들의 꿈의 나라로 아이들은 자신의 환상적인 세상에서 놀다가도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고, 아이들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피터에게는 네버랜드를 떠나도 돌아갈 집이 없었다. 자신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엄마가 없었던 것이다. 아기였을 때, 피터 역시 신나게 네버랜드에서 놀다가 엄마가 무척 그리워 집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집은 피터가 못 들어오게 잠겨 있었고 엄마는 피터라는 존재를 잊어버렸다. 엄마가 보여준 ‘불신’은 그토록 엄마를 그리워했던 피터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고, 결국 세상에 대한 ‘불신’과 어른에 대한 혐오가 피터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았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피터를 영원히 네버랜드에 남게 한 것이다.

그렇지만 피터는 엄마에 대한 불신감 속에서도 끊임없이 엄마를 찾았다. 인간이 태생부터 함께한 엄마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을 피터도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아니, 엄마에게서 버림받은 피터라서 더욱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에릭슨은 인간의 발달에는 그 시기에만 발달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시기’가 있는데, 결정적인 시기를 놓치게 되면 인간은 평생 그 발달과제를 이룰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이루지 못한 발달과제를 이루기 위해 그 단계로 회귀하는 퇴행현상을 보인다. 유아기로의 퇴행현상은 유아기에 발달과업을 이루지 못하고 결핍된 것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며, 영아기로의 퇴행현상도 마찬가지이다. 피터는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엄마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 위해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 영원히 아이로 남아있으며 자신이 받지 못했던 엄마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자 한다.



‘웬디’의 존재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웬디 역시 어린 여자아이일 뿐이다. 그러나 웬디와 피터의 첫 만남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웬디는 울고 있는 피터를 달래주며, 손수 피터의 그림자를 피터의 발목에 꿰매어준다. 피터의 상처받은 어두운 영혼을 끌어다가 치료해주듯이 말이다. 피터가 웬디에게 네버랜드에 가자고 할 때도 그곳에 있는 아이들에겐 엄마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토록 엄마를 경멸하고 엄마에 대한 불신감이 컸던 피터였지만, 결국은 엄마를 요구하는 여린 인간이었던 것이다. 웬디가 네버랜드에 가서는 어땠는가. 존이나 마이클 등 다른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고 모험을 즐기고 짐으로 돌아오지만, 웬디는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며 아이들을 잠자리에 재우는 등 엄마가 하는 일을 도맡아서 했다. 아이들이 다치거나 우울해할 때 달래주고 노래를 불러주는 등 네버랜드에 따스한 모정을 전달했고, 피터는 물론 네버랜드에 있는 아이들도 역시 웬디를 ‘엄마’라고 불렀다. 심지어 웬디의 동생인 존과 마이클마저도. 또한 웬디가 짐으로 돌아와 어른이 되었을 때도, 피터는 어느 날 갑자기 웬디의 집 창문에 나타나 봄맞이 대청소를 하러 함께 떠나기를 재촉한다. 물론 네버랜드의 ‘엄마’로서 말이다. 웬디가 어른이 되어 날 수가 없게 되자, 그녀의 딸 ‘제인’이 대신 네버랜드의 엄마가 되러 여행을 떠나며, 그 후엔 제인의 딸 ‘마거릿’이 피터를 따라 나선다. 피터는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아 자신의 엄마를 찾아 해매는 것이다.



<켄싱턴 공원의 피터팬>에서는 웬디의 역할을 ‘마이미’가 수행하고 있다. 어느 날 몰래 들어온 문 닫힌 캔싱턴 공원. 그곳에서 길을 잃은 마이미는 우여곡절 끝에 요정들의 도움으로 그들이 만들어준 작은 집에서 한 밤을 자게 되고, 다음날 아침 피터와 마주치게 된다. 그녀는 피터에게 바깥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피터 또래의 소년들이 어떻게 노는지 가르쳐 준다. 그리고 감정을 포함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키스’를 주기도 한다. 피터는 마이미에게 ‘모정’을 느끼고 요정들의 섬으로 함께 가기를 거듭 부탁한다. 마이미는 집에서 기다리는 엄마를 생각하며 웬디와는 달리 요정의 섬에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중에 꼭 요정의 섬에 같이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말이다. 그 후, 피터는 매일 잊지 않고 탠싱턴 공원의 작은집 앞에 서서, 오지 않는 마이미를 기다리곤 했다. 피터가 엄마를 애타게 그리워했던 것은 <피터팬>보다는 <켄싱턴 공원의 피터팬>에서 훨씬 잘 드러난다. 그는 어쩌다가 들어가게 된 요정들의 섬에서 빠져나와 제일 처음으로 엄마를 보기를 원했다. 새들과 요정들에게 엄마가 보고 싶다고, 엄마에게 데려다달라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 “우리 집 창문은 열려 있을 거예요. 제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가 언제나 창문을 열어놓는걸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피터는 잠겨있는 창문 앞에서 좌절을 하고 만다. 엄마와의 신뢰가 무너지고, 더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피터는 다시 켄싱턴 공원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곳에서 살게 된다. 모성애를 대신 충족시켜줄 마이미를 요정의 섬으로 데려가려고도 하면서 말이다.







'네버랜드'라는 죽음에 숨어있는 아이



피터팬 증후군.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고 평생 아이로 남고자 하는 증상. 영원히 아이들의 나라인 ‘네버랜드’에 남고자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런 사람들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아기에 고착되어 있으려는 특성을 지니며, 이는 그 시기에 무언가가 결핍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세상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무력감, 사회에 대한 불신 등에서 원인을 찾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에서, 깊숙한 유년시절의 기억 속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네버랜드는 누구나 가본 곳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제는 너무 어른이 되어 버려서 기억은 잘 나지 않겠지만, 상상 속에서 숨을 쉬고 동화 속에서 자주 보고 꿈속에서 항상 놀러갔던 아이들의 행복한 놀이터이다. 그러나 이곳이 꼭 행복한 곳이라고만은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네버랜드에만 존재하는 불행을 하나 꼽자면, 바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즐겁고 신나는 감정밖에 느끼지 못한다. 아니, 그것도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태일 뿐이다. 피터 역시 새롭고 신선하고 즐거운 것만 생각하지, 그 외의 것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네버랜드에는 슬픔도, 분노도, 외로움도, 두려움도, 사랑도 없다. 피터는 복잡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복잡한 삶을 살아나가는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다. 그러나, 피터 ‘키스’가 뭔지도 모르고, ‘사랑’이 뭔지도 모른 채 오로지 엄마만을 찾아 해매며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을 좋아하는 정말 유아적인 공간인 것이다. 어른들이 어렸을 때가 좋았지, 하며 미소 짓는 것은 다시는 갈 수 없는 ‘네버랜드’를 향한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미화되어서 그렇지, 실제로 네버랜드는 외로운 줄도 모르고 슬픈 줄도 모르는 버려진 아이들의 상처들로 얼룩진 공간이다. 욕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곳, 혹은 결핍으로 인해 더욱 해맑게 욕망을 찾아 나서는 아이들의 위태로운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들은 결국엔 그곳을 뒤로 한 채 엄마를 찾아 집으로 돌아간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만이 네버랜드에 꼭 꼭 숨어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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