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만났고, 나는 무슨 일을 하는가
※주의※ 이 글은 소개팅이나 연애담 그런 류의 글이 아님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날, 기적처럼 만났죠
10월의 어느 날, 전형적인 사무실이 아닌 망원동의 아주 고급 진 카페에서 지금의 대표님을 만난 날을 기억합니다. 사실 기계적으로 이력서 등록 버튼을 누르는 것에 지쳐갈 때 즈음, (지금의 회사가 아닌) 어떤 회사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어요. 그다지 가슴 뛰는 일은 아니었지만. 집 밖에 나가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고민을 할 여지는 많지 않았죠. 그리고 확답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지금의 회사인 애프터모멘트를 만나게 되었던거에요.
처음에는 호기심이 반이었습니다.
사실 어떤 회사인 지 잘 모르고 지원한 게 차라리 실수였다면 이런 것이 기적이란 걸까요? 보통 이력서 등록과 인터뷰를 하기 전에 ‘기업 조사’라는 것을 하잖아요? 그런데, 다른 회사의 입사는 어느 정도 확정적인 상태에서 인터뷰에 임하다 보니 나 자신이 너무 나태했던 거예요.
- 글쓰기는 어느 정도 자신 있는 영역이니까 오케이, 워크샵도 해봤지 오케이,
- 비록 MBTI가 I로 시작하지만 사람 만나서 떠드는 것도 좋아하잖아. (사회생활 한정) 오케이.
- 어느 정도의 밝음과 예의도 장착하고 있잖아, 그럼 이것도 오케이.
그러니까, 대충 JD에 써져있는 정성적인 영역으로 나 자신을 평가하고 너무 오만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갔던 거죠. 하지만 ‘컬쳐덱’의 저자로 대표님의 유튜브 세바시 강연도 재밌게 봤던 저로서는 너무 궁금했어요. 어떤 기업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평소 자주 향하지 않던 망원동으로 가는 길은 예기치 않은 공사 구간의 연속이었고, 오히려 택시를 타는 것이 더 오래 걸리는 불상사를 초래했습니다. (이후로 이 길은 절대 택시를 이용하지 않기로 다짐하게 되었죠)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1시간을 예상했는데, 우리는 2시간을 떠들었습니다. 기업 소개, 하게 될 일과 내가 이전에 했던 일 사이의 핏을 맞춰보는 시간이라 하고 암벽 타기를 즐기는 대표님과 서핑을 즐기는 나…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한 것 같네요.
어라, 나 이 회사 가고 싶었네?
조금 더 치열하게 기업 조사와 대표님에 대한 뒷조사를 하고 나름 긴장감을 가지고 인터뷰에 임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아무도 장담 못 하는 거지만, 사실 지금은 많이 반성합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찾아보니 그날 대표님이 저에게 해주신 얘기는 이미 다 책과, 홈페이지와, 노션과 기타 등등에 있던 것들이었어요. 집에 돌아와서 얼마나 이불킥을 했는지 몰라요.
맞아요, 어쩌면 이 글은 그때의 저를 반성하는 반성문일지도요.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의 밝은 분위기가 좋았다,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1년 동안 운동과 결혼 준비 외에 별다른 경제 활동도 없이, 따로 잡은 약속 외에 사회생활도 없이 지내 와서 내심 마음속의 그늘이 보이진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 ‘그래도 나 아직 살아있었네’라는 생각에 안도했던 생각이 납니다.
몇 명의 지원자를 더 만난 뒤에, 입사 예정이 되어있는 회사와 겹치지 않도록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인사를 나누며 왠지 망원동에 또 오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요. 역시, 저의 감은 틀리지 않았네요.
그래서 하고픈 말은,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 담당자에서, (일종의 2차 전직과도 같은 느낌으로) 지금은 2주 차 조직문화 담당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직문화 워크샵을 통해 ‘컬쳐덱(Culture Deck)’으로 기업의 조직문화를 정립하고, 브랜드의 메시지와 철학을 담은 브랜드 북을 제작합니다.
책 “쓰기의 말들” 중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시킨다’는 문구처럼, 아직은 익숙치 않은 일에 매일 나의 밑천이 드러나는 기분이지만 그 밑천이 이 정도라는 것을 이제라도 알았음에 감사하며 또 하루 하루를 쌓아갑니다.
더불어 조금 오래 걸렸지만 시린 겨울을 치열하게 지나게 해줄 나의 업(業)을 비로소 갖게 되었음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기업의 조직문화와 철학을 기록하는 인터널 브랜딩 회사에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