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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일호 Nov 03. 2017

런던에서 다시 쓴 자기소개서

'영국 런던', '프랑스 은행', '소시에떼 제네랄', 'UX 디자이너'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은행인 소시에떼 제네랄(Societe Generale)의 UX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2017년 늦가을, 현재의 나를 설명해주고 있는 이 문장에는 여러 가지 낯선 키워드들이 담겨있다. '영국 런던', '프랑스 은행', '소시에떼 제네랄', 그리고 'UX 디자이너'. 이들을 나열해보면서 나의 현 상황을 하나씩 짚어보고자 한다.


영국 런던

나는 영국에서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정식 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다만 2년 전, 레이븐스본 대학교(Ravensbourne University)에 한 학기 교환 학생으로 처음 런던에 왔었다. 짧게나마 영국 친구들과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이 곳에서 언젠가는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래서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처음부터 다시 다듬기 시작했고, 런던에서 취업을 하려면 스스로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많은 리서치와 고민을 했다. 학기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인턴, 알바, 봉사 등 어떤 형태로든 영국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링크드인을 통해 20개가 넘는 회사에 무작정 지원을 했다. 대부분이 UX 디자이너 공고였고 대부분이 모르는 회사였다. 돈을 받으며 일할 수 없는 비자 상태였기 때문에, 무급 인턴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정성스레 쓴 이력서, 커버레터, 포트폴리오를 글로 꽉꽉 채워서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다시 제대로 준비해야겠구나...

간혹 '너의 포트폴리오를 봤어! 좋더라. 근데 비자 타입은 뭐니?'라고 묻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

비록 비자 스폰서쉽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답장도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그런 사소한 대화에도 마음이 들떴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품고, 아무런 경력도 쌓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확히 2년 뒤, 영국 런던에서 취업을 했다.



프랑스 은행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프랑스 은행'에서 어떻게 일하게 된 걸까?


한국에서 친구와 이태원에서 만나 런던에 가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한참 떠들고 있을 때였다. 6개월 전 봄이었다. 그때 갑자기 국제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기대를 품고 전화를 받았다.


"Hello, I'm a HR recruiting manager in Societe Generale, the French bank based in London."

그렇게 갑작스럽게 간단한 전화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그는 내 링크드인 프로필과 웹 포트폴리오를 보고 나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그와는 간단하게 이력서에 적힌 내용에 대해 얘기했고, 그는 전화가 끝날 때 즈음 영국에 언제 오냐고 물었다. 7월 6일.


그는 그 이후로 인터뷰 약속을 잡아주었고, 런던에 도착하고 바로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런던에서 집을 구하기도 전이었다.


한편으로는 너무 급하게 진행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빨리 일을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영국은 사람을 뽑을 때, 스크리닝 ('Screening') 단계를 매우 중시한다. 내가 어떤 회사와 계약을 맺고 프리랜서로 일했는지, 한국에서의 주소는 어디었는지, 현재 런던의 주소는 어디인지 등 자료를 다 제출했고, 이를 검증하는 시간이 한 달 이상 걸렸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9월 4일 입사했다. 프랑스인들이 매우 많고, 프랑스어를 너무나 당연히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는 이 회사에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못했던 내가 일하게 되었다.


소시에떼 제네랄

알고 보니 프랑스에서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은행 지점도 전국적으로 매우 많은 한국의 '국민은행' 같은 곳이었다. 나는 런던 SGCIB(Societe Generale Corporate & Investment Banking)의 CDO(Creative Digital Office)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사실 일을 시작하기 전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은행에서 디자이너가 필요하다고? 그것도 UX 디자이너가? 이론적으로 파이낸스 업계에 UX 적인 방법론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실질적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궁금했다. 한편으론 내가 여기서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아 걱정되기도 했다.


소시에떼 제네랄, SG에서 일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서도 앞으로 계속 정리할 예정이다. 다양한 프로젝트에 여러 가지 역할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는데, 아직까지는 상사를 백업해주고 있다. 다음 주부터 새로 진행될 프로젝트에 내 이름을 올리고 UX Designer/Analyst로 참여할 예정이다. 보통 프로젝트는 IT, UX, Business 팀에서 한 명씩 대표로 참여해서 작은 팀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진행된다. 지금까지 두 달 동안은 이런 흐름과 프로세스를 읽는 데에 꽤나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주도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보면 금융 업계에서 서비스를 어떻게 기획하고 진행하는지, 그 과정 안에서 UX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인지 더 경험하고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UX 디자이너

나는 UX 디자이너다. 다른 분야에 있는 친구나 할아버지, 심지어 부모님이 'UX 디자이너'가 무엇인지 물어볼 때마다 사실 속으론 당황스럽다. 나도 정확히 정의를 내리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인을 하는 비주얼 디자이너와 다르다는 점은 확실하다.


대학 때, 제품 디자인을 전공으로 공부했고, 그 일부로 UX 디자인을 공부해왔던 나로서는 UX 디자이너라는 직무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그저 감사하다. UX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직무가 모두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업계, 제품, 플랫폼, 회사마다 서로 다른 업무를 맡아서 하기 때문에, 자신의 업무 영역조차도 스스로 구축해 나가야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읽고 배우고 깊어져야만 UX 디자이너로서 전문성을 가질 수 있다.


요즘 UX 디자이너로서 어떤 방향으로 나의 전문성을 키워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 은행의 UX 디자이너로서 비즈니스적인 마인드와 금융 업계에서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대기업에서 어떻게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서비스를 디지털화하는지 배워야겠다.



이렇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나타내는 키워드를 가지고 자기소개를 해보았다.

매일 1시간 출퇴근과 규칙적인 회사 생활로 인해 집에 가면 잠만 자는 나를 위해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2017년 어떤 과정을 거쳐 이 곳 런던에 오게 되었고,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이렇게 말하고 보니 거창한 듯싶지만, 너무나 사소한 디자인을 하고 있어서 가끔은 허무하기도 한 회사 생활에 대해 어떻게 방향을 잡고 가야 할지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또 나는 어두워진 사무실 밖을 바라보며 저녁 식사로 뭘 요리할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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