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희선 Feb 05. 2024

2월 4일

원고를 다듬으며, 원고에 등장하는 분들에게, 그분이 개입된 이야기와 실명을 그대로 써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고 있다.

이럴 때, 가슴이 작아진다. 상대방이 허락을 구하는 내 글을 읽은 걸 확인했는데 바로 답이 오지 않으면, 마음이 이만저만 작아지는 게 아니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더하다. 남보다 더 매서운 반응이 나올 수 있음을 안다)


이유가 있다. 글을 다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극히 일부분을 보낸다. 행여 다양한 글들, 조금은 더 낫고 임팩트가 있는 글들이 있겠지만, 그저 평범하기만 한 일상일 수 있는 한 부분만 읽고, 내가 쓴 글 전체를 폄하할까 두렵다.


또 하나. 실제로 글 전체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출판으로 이어질 만하지 않을 수 있는, 그저그런 있으나마나한 글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아직 검증받지 못한 글이다.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쓰는 글이 아니다. 그러니 결국 출판사에 열심히 투고하는 것으로만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내 원고에 대한 자신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책으로 내려는 욕심에서 기인하는 두려움일지도.

오늘 글 하나에 나오는 세분, 또 하나의 글에  나오는 한 분, 모두 네분께 허락을 구했고, 모두 기꺼이 허락해주셨다.




오늘 짧은 원고 하나를 페이스북어 올렸다. 손자들을 위한 편지 네편 중 하나다.


"나중에 손자들이 크면 읽게 되기를 바라며 썼던 편지". 2


레이첼 카슨 할머니는   자연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깊이를 알려준 과학자였지만 글도 너무 잘 쓰셨어. 그분이 살아계실 때 미국 전체 책들을 통틀어 제일 잘 쓴 책에 주는 상이 있는 데, 그 상도 받으셨거든. 그런데 그분이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쓰냐고 묻는 고등학생들에게 하신 말이 있어.


“쓰려고 하는 글이 글을 쓰는 사람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글을 쓰려고 하는 그 내용을 깊이 알려고 해야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생각했지. 너희를 위해 기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너희들, 나의 작은 우주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이지. 너희들은 엄마와 할머니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갖고 있어. 아마 끝도 없을 만큼 많은 걸 가지고 있을 거야. 너희들 안에 뭐가 어떻게 있을까. 할머니가 며칠 전 읽은 책에서 매실에 대해 알게 되었어.


“6월 매실을 수확할 때 즈음이면 일본에서는 우메보시를 담근다. 우리가 먹는 매실장아찌와 달리 일본의 우메보시는 설탕이 아닌 소금을 사용한다. (…) 나는 밥그릇을 들고 매실 맛이 짙어지기 전에 언저리부터 먹어나간다. 가운데로 갈수록 짙어지는 매실의 맛, 한 입 입안에 머금는 것만으로도 마치 금구류의 알갱이 하나하나가 살아 일어나듯 나의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 시큼함에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살아난다. 녹차의 쓴맛, 매실의 신맛, 시간이 스며든 짠맛, 갓 지은 밥이 남기는 구수한 맛이 차례차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비강을 뚫는 신맛과 혀뿌리에서 박히는 쓴맛과 짠맛, 이 모든 것이 넘어간 다음 남게 되는 구수한 맛까지. 작은 매실 안에 담긴 맛은 작은 우주다. (…) 마지막까지 매실을 남겨 뜨거운 녹차를 다시금 부어 젓가락으로 매실을 흩뜨리면 매실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자신의 몸을 허물어뜨려 속살을 보이고 안으로, 안으로 감추어둔 최후의 신맛과 짠맛을 드러내 보였다.”_ 후우카김 <그럼에도 눈부신>(토기장이) 중에서.


책을 쓴 분이 매실의 맛이 어떤 건지 알려주셨는데 그 부분을 읽다가 매실이라는 작은 열매 하나지만 그 안에 얼마나 여러 맛이 담겨있고,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하며, 그 작은 열매 하나가 할머니에게는 위대하게 느껴졌어. 한 계절 왔다가 사라지는 열매의 맛이 그런데, 1, 2년도 아니고 10년, 20년, 30년, 할머니같이 60년 삶을 훌쩍 넘어 70년에서 어쩌면 100살까지 살아가며 드러낼 너희들 안에는 어떤 맛, 얼마나 다양한 맛이 깃들어 있을까.

그러니 할머니는 나의 작은 우주가 안전하기를, 아름답게 드러나기를 기도할게.

작가의 이전글 2월 2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