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하 대표를 만났다. 책 출간 문제와 별도로 10년 이 훨씬 넘어 만나는 게 즐거웠나 보다. 약속 장소인 홍대 입구 전철역에 도착하자 기대하는 마음과 함께 싱글벙글 다물어지지 않는 내가 느껴졌다. 내게 여유가 많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새삼스러운 만남에 긴장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 역시 나이가 하는 일이군. 나이를 먹는다는 건 분명 시간의 경과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세상과 사람을 조금은 여유롭게 관망하며 관찰할 수 있게 되었음을. 주막에 가서 보리밥과 황태구이를 시켰고, 맛있게 먹었다. 차를 마시며 원고 이야기가 나왔다.
“제 원고 정말 책으로 내실 거예요?” “네” 배 대표가 당연한 듯 답했다. “진짜요?” 가끔은 내가 글을 잘 쓰는 것 같다. 때로는 필요한 글을 쓰는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원고가 수없이 많고, 훌륭한 책들이 그리도 많은데, 내가 쓴 글을 기꺼이 책으로 내겠다는 데는 솔직히 놀란다. 그리고 고맙다. 다만 판매가 걱정이다.
“잘 안 팔리면 어떻게 해요?” 그러나 이어 말했다. “하긴 <대장간>은 잘 팔리지 않아도 필요한 책이라면 내는 곳이긴 하지요!” “하하. 저희는 1년 내내 그런 걱정으로 살아가요. 그런데 <대장간> 말고 <비공>에서 하려고 해요.”
배용하 대표는 <대장간>과 <비공>의 대표다. <대장간>은 기독 출판사고, <비공>은 일반출판사다. <대장간>에서는 일반 기독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반복되는 주제와는 다른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는 책이 나온다. 자끄 엘륄을 만난 곳이 바로 <대장간>이고, 여전히 그곳에서 아직 알지 못하는 여러 주제를 만나 내 신앙을 조금은 더 넓히고 있다. 그럼에도 <대장간>은 내 원고의 수준이 따랄 갈 수 없는 곳이고, 게다가 내가 믿는 신을 좁디좁은 영역으로 제한하거나 왜곡하는 기독교 용어를 피하거나 싫어하는 내게는 애초에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러니 <비공>에서 책이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데, 과연 내 글의 수준이라는 게 과연 <비공>에 적합할지 모르겠다. 편집이 좀 필요하다고 했다. 일기로 쓰였기에 날짜만 있고 소제목이 없는 글을 대략 기간을 정해 그 안에 글을 담고 소제목을 달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예상했었다. 이전에 낸 두 권의 책과는 좀 달리 편집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제목 이야기도 있었다. “가제 두 가지 중 어떤 게 더 나아요?” 가제 둘이란 <나이가 하는 일> <나는 어느 정도 슬플 때 나에 대해 안심한다>다. “글쎄요” “<나이가 하는 일>이라고 나온 책은 없더라구요.” 제목이 <나이가 하는 일>로 되려면 나이에 대해 좀 더 생각해야겠다 생각하며 필요한 부담감이 기분 좋게 생겨났다.
““나이가 하는 일”이라는 꼭지 하나를 써야겠어요”“맨 끝 말고, 그 몇 꼭지 앞 뒷부분에 넣으면 좋겠지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