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 열차》

by 조희선


"‘고전 문헌학자’, 그레고리우스와 ‘자기 삶의 고고학자’, 프라두의 조우. 언어가, 글이 마침내 드러내는 세계!" - 고전 문헌학자,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와 ‘자기 삶의 고고학자’,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만남은 언어와 글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발굴하고 다시 구성하는지를 보여준다.

지역, 가정환경, 시대적 태어난 배경(리스본, 살라자르 독재, 저항운동 등)을 포함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해진 부모, 만나는 사람들, ‘우연!’ 그리고 언어. 타인이 모아놓은 자신의 기록, 친밀한 사람들 간 생각의 나눔과 글, 편지. 그것들을 우연으로 만난 또 다른 한 사람 그레고리우스. 이 글을 소재로 자신의 철학을 써 내려간 파스칼 메르시어의 글을 읽는 독자들! 그리고 나! 그리고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있을 사람들이 하게 될

질문!


“내게 다른 삶이 가능했을까?” “내 삶에 대해 내가 평생 붙잡고 온 질문은?”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이 되지 못했나?”

“지금까지의 삶이 어딘가, 혹은 누군가에 의해, 타인이라는 법정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한 삶이었다면, 아니 지금 그걸 자각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할 수 있는가? 겉으로는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라도 자유가 가능한가?”

“겉으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도, 자유는 가능한가?”—이 질문이 나를 끝내 놓아주지 않는다.


치열하게 사유함으로써 타인의 압박에서 벗어나, 마침내 자유로워진 사람.

오랜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응원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책 이야기다.

그러나 나눔을 하고 나니,

어쩌면 그는 에고이스트다.

그의 치열한 사유,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명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특별히 좋은 사람도, 특별히 훌륭한 사람도 아니다.

다만 그는 그야말로 언어의 연금술사였고,

그의 언어는 읽는 이를 각자가 가야 할 곳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탁월했다.

어쩌면 우리는 좋은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일 필요는 없는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은 타인의 강력한 요구가 되고,

그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 타인은 곧 법정이 된다.

생각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독재.

내면과 외면 세계의 독재,

내면의 두려움, 부모의 압박, 정치적 독재,

그리고 신의 독재까지.

책 안의 문장이다.

“독재가 하나의 현실이라면 혁명은 하나의 의무다.”

열일곱 살의 프라두가 졸업식에서 한 연설,

‘신의 말씀에 대한 경외와 혐오’를

나는 그가 겪는 개인적 압박과

살라자르 체제의 정치적 독재,

그리고 저항하지 못한 종교적·신적 독재의 이중성에 대한 혐오로 읽는 대신,

조금은 엉뚱한 해석을 덧붙였다.

모순을 그대로 품고 있는 성서,

그것은 신을 향한 열린 창구일 수도 있는데

언어의 비밀과 무게를 외면한 채

자의적으로 수용하는 종교의 무지와 뻔뻔함을

프라두는 비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언제나

타인을, 그리고 세계를

나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곡해한다.

《리스본행 야간 열차》는

독자를 유혹하기 위해 붙인 제목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보다 더 적절한 제목은 없겠다.

그 안에는 언어와 심리, 내면과 관계, 독재라는

인간 존재의 핵심 주제들이 공존하고,

결국 리스본이라는 장소를 통해

그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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