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남편)에게 어쩌다 걸려들어 - 정확하게는 언제부턴가 내 옆에서, 심지어 내가 수강하는 과목의 수업 강의실까지 들어올 정도로 내 옆에서 맴도는 이 사람을 보기 좋게 걷어차려고 그의 데이트 신청에 응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했던 말은 나오지 않았고, 그 말이 나오는 때를 기다리다가, 그러니까 그야말로 어쩌다가 걸려들어 - 연애하고, 결혼했다.
46년 전 1월 25일, 바로 오늘이다.
생각해보면 다를 수 밖에 없는, 그래서 하나같이 다 다르기만 한 그와 나의 결혼생활이 쉬울 리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46년 째 함께다. 그를 떠나고 싶었던 많은 순간 만큼, 그를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많기도 했다.
나의 경제적 무능, 독립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 그리고 어른이 된 딸들의 출가 후에는 손주 해와 달이 받을 아픔. 심지어 홀로 남겨질 남편을 향한 연민까지.
따지고 보면, 그를 떠나지 못할 이유가 그를 떠날 이유보다 훨씬 많았다.
한 권의 책, 한 폭의 풍경, 한편의 영화 혹은 드라마, 그 안의 대사 한 마디가 나를 만든다. 하물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의 말 한마디,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가, 그의 생각 한편 한편이 내게 어떻게 다가왔겠는가.
그 영향이 너무 커서 힘들었다. 그런가 하면 동시에 그에게서 멀어질 수 없었던 만큼 그가 내게 끼친 영향이 중요해서 떠날 수 없었다.
그가 없는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자부심이라는 걸 가질만한 아무것도 없으나,
지금의 내가, 그가 있어서 가능한 지금의 내가 그리 싫지 않다.
우리는 많은 걸 함께 해왔다. 함께 아이들 문제로 싸웠고, 기뻐했고, 슬퍼했고 걱정했다. 서로의 발전을 절실히 바라며 응원했고 서로의 실패 때문에 가슴 아파했다.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알고 이해한다. 무수 일이든 함께 결정하고, 서로에게 저지른 실수를 가슴으로 느끼며 아파했다. 어느 정도로는 - 조금 아쉽기는 하다. 어느 정도인 것이 - 벌거벗어도 부끄럽지 않아, 유치할 정도로 지껄이는 유머? 농담 따먹기?
이제는 다가올 죽음을 예비하며 결속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함께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딸들과 사위들, 손주들을 공유한다.
남편을 데리고 여행을 가는 사위, 지인의 인스타 포스팅을 보고 소개한 사진전(버틴스키의 사진전, 추출/ 추상)에 함께 가자고 하는 사위, 멈추지 않는 잔소리로 엄빠를 챙기는 딸들과 보고 있으면 챙겨주고 싶고, 앞길이 애잔하게 느껴지는 손주들은,
그와 내가 함께 맺은 결실이다.
이제껏 함께 서로를 그리고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버텨온, 그와 나의 성실에 감사하며 자축한다.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곳도,
갖고 싶은 곳도 도무지 없는데,
어떻게든 기념일을 챙기고 싶어 동네 레스토랑에 갔는데,
대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