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엄지공주는 읽지 말아라

콘텐츠 지뢰밭에서 평등 가르치기

by hee

요즘에 브런치에서 안데르센 동화 각색 공모를 하길래, 안데르센 동화를 다시 좀 읽어봤다. 그런데 엄지공주라는 동화는 이제 보니 완전 유해 물질 수준의 쓰레기 같은 이야기였다. 읽는 내내 아주 불편했다.


내용은 이렇다. 키가 1인치 정도 되는 작은 소녀가 있었는데, 못생긴 두꺼비 엄마가 며느리 삼으려고 납치한다. 지나가던 물고기들이 소녀가 예쁘고 가엾다고 구출해준다. 그런데 풍뎅이가 다시 예쁘다고 납치한다. 하지만 다른 풍뎅이들이 다리 두 개밖에 없다는 둥 못생겼다고 배척한다. 그러자 정작 소녀를 납치한 풍뎅이도 등을 돌리고 버려버린다. 소녀는 숲을 헤메다가 들쥐의 집에 도착, 들쥐는 잘해줬지만 옆집 두더지랑 결혼시키려고 한다. 그와중에 남쪽나라에 가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 제비를 엄지 소녀가 잘 보살펴준다. 제비는 회복한다. 시간이 흘러 소녀가 두더지와 결혼하는 날, 이 제비가 날아와 엄지소녀를 데리고 남쪽나라로 탈출한다. 제비는 소녀를 꽃에 내려줬는데, 꽃에는 작은 사람이 산다. 그중에서도 소녀가 내린 꽃에는 작은 사람중의 왕이 있다. 그는 잘생겼고, 엄지에게 한눈에 반해 청혼해 결혼한다. 이후 제비가 덴마크로 날아가 이야기 요정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우리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작고 예쁜 여자 아이가 납치, 감금에 반복 노출되다가 돌봄을 특기로 선의의 누군가에게 구출되었고, 그 끝은 얼굴 한번 본 남자가 청혼해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했다고…소녀는 결정권도 없고 힘도 약했다. 그리고 처음 만났지만 뭔가 왕이라는 권력도 있고 잘 생긴 남자랑 결혼하는 게 해피엔딩이라니 어이가 없다.


이런 터무니없는 프로파간다에 소녀들이 오랜 시간 동안 노출되어 있었다니 너무 끔찍했다. 그 사실을 처음 아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이야기를 읽은 지가 너무 오래 돼서 더 충격적인 것 같다. 나도 어릴 적에 이걸 읽었을 텐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요즘에야 이런 레퍼토리가 우리 때보다는 적겠지만 (그렇…겠지..?) 너무 오랜만에 이런 쓰레기 레퍼토리를 읽게 되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거의 유해물질 수준이다. 우리 아기가 절대 읽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혹시 이런 걸 읽게 되더라도, 그래 예전엔 이런 고루한 이야기가 있었지, 하고 지나가는 세상이면 좋겠다. 뭐 그러니까 각색 동화 공모를 하는 거겠지.. ? 삽화 공모 1등 작품은 이 엄지공주를 방울토마토 공주로 각색했는데, 미션을 지닌 능동적인 공주로 재탄생시켰다. 그 각색 작품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남편은 반말, 아내는 존댓말을 한다는 것.


얼마 전에는 아기 동요를 하나 듣다가 “새들의 결혼식”이라는 노래에서 남편이 “결혼 제도 종용하는 프로파간다”라고 해서 웃었다. 새들이 숲속에서 결혼한다는 되게 간단한 가사인데, 듣고보니 그랬다. 새가 왜 결혼을 해 굳이. “곰 세마리”도 대표적으로 시대착오적인 가사다. 아빠곰은 뚱뚱하고 엄마곰은 날씬하다니 너무 불편한 가사다.


세상은 변한다. 항상 성에 찰 만큼 변하지는 않지만 변하긴 변한다. 그 말인 즉 우리가 전수하고 싶고 또 전수해야 할 이야기들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을 해도 아이들은 결국엔 성 고정관념을 배울 것이다. 내 아기는 어느 순간 분홍색을 좋아하게 될 것이고 소방관은 남자만 하는 거라고 생각할 것이며 여자애들과 남자애들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회의 문화나 분위기라는 것까지 개인 가정이 뜯어고칠 순 없으니까. 하지만 그러니까 더욱 더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평등을 가르쳐야 한다.


콘텐츠 지뢰밭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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