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아프면 십년은 수명이 단축되는 것 같다. 말그대로 십년감수 바이브.. 우리 아기는 지금 인생 156일차밖에 안 됐는데 벌써 십년감수할 일이 세 번 있었다. 토가 나오면서 숨을 못 쉬게 되는 것이다. 오늘이 세 번째였다.
갑자기 켁켁하면서 얼굴이 창백해지고 행동이나 반응이 느려진다. 그럴 때 아기를 엎어서 등을 두드리면 토가 왕창 나온다. 먹은 걸 거의 다 토하는 것처럼 주룩주룩 쏟아진다. 잔뜩 쏟아낸 뒤 혈색이 돌아오고 빽 울면 이제 살았다 한다. 병원에 가거나 구급대원이 오는 건 그 뒤라서, 멀쩡한지 확인 받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첫 번째 때는 기도가 막혔는지 진짜 숨을 못 쉬어서 너무 놀랐다. 아침 7시쯤에 내가 먼저 눈을 떴고, 아기가 일어날 것 같아서 아기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기 배에서 꾸룩꾸룩하는 큰 소리가 나더니 커컥컥 하며 얼굴이 벌개지기 시작했다. 내가 놀라서 왜그래! 하고 소리쳤고 아직 누워 있던 남편이 달려와 아기를 거꾸로 뒤집고 등을 두드렸다. 걸쭉한 토가 아기 입에서 쏟아졌다. 아기가 빽 울었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아졌다. 그래서 그날은 밥 먹이고, 한잠 재우고 소아과에 다녀왔다.
두 번째 때도 드라마틱하다. 아기가 밤잠을 자기 전 목욕하는 시간이 저녁 7시다. 6시쯤부터 산책도 다녀오고 한참 놀고서, 남편이 아기 목욕 물을 받았다. 나는 아기를 잠깐 바닥에 뉘여놓고 목욕 후 입힐 옷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을 다 받고 아기를 데리러 나온 남편이 아기가 갑자기 창백해보인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는 아기가 원래 살 색이 하얘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이 아기를 들어 안았는데 몸에 힘이 없다고 했고, 다시 보니 정말 창백했다. 얼른 화장실로 데려가서 남편이 아기 등을 두드렸다. 나는 119에 전화했다. 남편은 아기 이름을 계속 부르면서 등을 두드려대고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잠시 뒤 아기가 혈색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119는 그날 근처에 소방서에는 구급차가 없어서 다른 데서 온다고 하여, 아기도 일단 괜찮아지고 해서 오지 마시라고 했다. 그러고서는 근처 대학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 앞에서도 아기는 또 많이 토했다. 그래도 혈색이 돌아왔고 상태가 괜찮아보여서 일단 한시름을 놨다. 응급실에서는 보호자는 한 명만 들어올 수 있다고 해서 남편이 들어갔다. 응급실 안에서 사진도 보내주고 상황도 전달해줬는데, 고 작은 팔에 주사바늘 꽂고 있는 사진을 보고 가슴이 저릿했다. 바늘 꽂을 때 세상 떠나가라 울었다 해서 또 마음 아팠다. 그런데 그와중에 또 너무 해맑고 귀여운 건 무엇.. 엑스레이도 찍고 심전도 검사도 하고 혈액검사도 했다. 이상은 없었다. 대학병원 외래를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외래에서도 이상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어렵겠지만 다음엔 가능하면 영상을 찍으면 좋다고 했다.
세 번째였던 오늘..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이번주 나는 시가에서 지낸다. 시가에서 지내면 아파트 내에 헬스장이 있어서 아기를 맡기고 운동도 할 수 있고, 남편이랑 잠깐 둘이 산책할 수도 있고, 시부모님이 아기를 같이 봐주셔서 좋다. 오늘 아침, 아버님이 아기랑 한참 놀아주시다가 아기가 졸려하는 것 같아서 안고 계셨다. 그런데 아기가 갑자기 켁켁하는 소리를 냈다. 남편이 먼저 가서 아기를 받아 안았고, 나도 뒤따라 갔는데 상태가 이상해보였다. 눈의 움직임이 느리고 행동도 느려보였다. 그래서 또 엎어서 등을 치기 시작했는데 토가 한무더기가 나왔다. 아버님이 119에 전화를 했고 나는 병원에 가져갈 아기 짐을 챙겼다. 중간에 아기 상태 기록을 위해 영상도 찍었다. 어머님이 아기 발바닥을 계속 만져주셨고 아기가 울었다. 땀이 뻘뻘 났고 덜덜 떨렸다.
119 구급대원들이 도착해 아기 상태를 확인해줬다. 그때는 역시 이미 아기가 괜찮아진 뒤였다. 긴장이 좀 풀려서 나도 숨을 좀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어머님이 고생했다고 등을 두드려주셨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 아기가 괜찮아졌어도 병원에 가서 소화제라도 처방받는 게 좋을 것 같아 소아과로 데려갔다. 동시에 대학병원 외래도 다시 예약했다. 폭풍같은 하루였다.
아기들은 원래 위장과 식도가 거의 일자라서 자주 게운다. 그런데 이렇게 토를 하고 숨이 막히는 건 다른 얘기다. 백일 이후에 목을 가누기 시작하면 토도 덜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우리 아기는 백일 이후에 목을 잘 가누면서 세 번이나 그랬다. 육아계에는 “애바이애”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애마다 다르다. 그리고 우리 애는 목을 잘 가누면서도 때때로 심하게 토하는 애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이러저러한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다. 그냥 어른처럼 체하는 건가 싶다.. 어떤 것이 급체의 트리거가 되었는지는 사건(?) 당일 혹은 직전 우리의 행동을 복기해보고 이건가, 저건가 하면서 확신 없이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아기는 말을 할 수 없어서 영원히 알 수 없다. 아기가 이렇게 잠깐 아픈 상황은 부모의 증언(?)에 기댈 수 밖에 없어서 의료진도 진찰이나 검사에서 특별히 문제가 없다면 어느 정도 추측과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어른들이 항상 아기 키우면서 가슴 철렁할 일들이 많다고 했다. 엄마도 그랬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사건도 많다. 내동생이 어릴 때 유독 다치는 일이 많았다. 자동차에 깔리고 맨홀 뚜껑에 턱 깨지고 가위에 손 잘릴 뻔하고... 그랬던 애가 지금 삼십 년 넘게 잘 살아서 아들도 둘이나 낳았다. 우리 남편은 어릴 때 손목을 유리에 크게 베어서 피가 철철 났다고,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시어머니는 종종 말씀하신다.
예전엔 엄마들의 이런 무용담을 흘려들었다. 그런데 이젠 나도 그 무용담 속에 감춰졌던 엄마들의 가슴 떨림을 알 수 있게 됐다. 새삼 내가 삼십 년 넘게 살고 있는 게 신기하고, 이렇게 살 수 있는 게 당연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 내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관찰하고 적절한 대처를 해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고, 죽을 병에 걸리거나 큰 사고를 당하지 않아 운도 좋았다. 당연한 삶은 없는 건가보다. 환경과 운이 이끌어갈 뿐. 하지만 내 아기의 삶은 당연하다고 믿고 싶다.
아기는 아침엔 힘들었지만 오후부턴 잘 지냈고, 저녁이 되어서는 갑자기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그렇게 소리 내어 웃지 않았는데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남편이 소리를 낼 때마다 웃어대서 같이 한참을 웃었다. 그 웃음이 또 너무 소중하고 예뻤다. 내 뱃속에서 사람이 만들어졌고, 그 사람이 어느날 밖으로 나와서 우리집에 같이 살고 있다. 그 사실이 종종 정말 이상하고 신기하다. 너무 기적같지 않나. 이 기적을 최선을 다해서 지켜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