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낳던 날 <5>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마취제와 피로에 절어버린 것 같았다. 분만 대기실에 잠깐 있다가 병실로 옮겨졌는데, 그 사이 뭘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엄마랑 동생 전화를 받은 것 같은데 무슨 얘길했는지 모르겠다.
회복을 위해 병실로 옮겨졌다. 그날의 첫 끼는 미역국이었다. 그 미역국은 생에 최고로 맛있는 미역국이었다. 나는 임신 기간 내내 혀에 무슨 필터라도 달린 듯, 뭘 먹어도 정말 맛이 없었다. 그런데 그 필터가 싹 사라져버린 듯, 미역국 맛이 현실로 느껴졌다. 소고기를 우려 소금으로 간한 국물 맛이 전에 없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황해의 하정우처럼 미역국을 입 안에 들이부었다.
아무래도 내 생일날 미역국은 내가 아니고 엄마가 먹어야 하는 것 같다. 당최 왜 생일에 생일 당사자가 미역국을 먹게 된 건지, 생애 최고의 미역국을 먹으며 조금 의아했다.
엄마가 됐다는 사실은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기가 나온 건 새벽 여섯시 양수가 터진 뒤 약 11시간만이었다. 뱃속에 있던 태아가, 정말 뼈와 살이 있고 피가 흐르는 아기가 되어 세상으로 나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제까지 뱃속에서 느껴지던 태동이 사라진 게 한없이 낯설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줄어든 배를 신기하게 만져봤다.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뛰어온 그날 아침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남편이 분만실에서 찍은 아기 사진과 동영상을 돌려보면서 정말로 내가 아기를 낳았고, 자녀가 생겼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휴대폰 속 아기 모습을 보면서 가끔씩 벅찬 기분도 들었다. 남편이 아기가 나왔을 때 “봄이야” 하고 아기의 태명을 불렀는데, 때마침 아기가 “에-“ 하고 소리를 내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여러 번 돌려봤다. 완전 우연이겠지만, 우리는 그게 아기가 대답해준 거라고 착각하기로 했다.
나는 어쩐지 수퍼파워를 얻은 것 같았다. 한껏 고양된 기분이 들었다. 아기와 함께할 나날이 너무 기대됐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올라왔다. 이건 아마도 임신 호르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최고의 기분과 최악의 기분을 수시로 오갔으므로.
마취가 조금씩 풀리는지 묵직하게 아파왔다. 앉아도 누워도 아파서 진통제 주사를 맞았다.
그때부터 나는 한 보름 동안 집에 가지 못 했다. 내 손으로 산후조리원을 예약했음에도, 그날 아침 그렇게 부랴부랴 집을 뛰쳐나온 뒤 그렇게 긴 시간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