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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섭섭 Sep 07. 2015

구름은 너무 두꺼웠고 달빛은 너무 밝았기 때문에

캐나다 옐로우나이프

노란 칼, 옐로우나이프.

어느 탐험가가 북위 62도에 위치한 이 도시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동네 인디언들이 허리에 노란 칼을 차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 이름이 ‘노란 칼’이 되었다고 한다. 칼의 색이 노랬던 이유는 지역에 구리 광산이 많기 때문이라고.

 

이름에 내재한 가감 없이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의미와는 달리 그 단어의 조합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는 어딘가 몽환적이다. 더욱이 NASA에서 오로라 관측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지정했다고 하니,

      

“그곳은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잖아!”하고,

야스타카는 말했다.      

켈로나에서 만난 동료 몇과 ‘오로라특공대’를 결성하여 옐로우나이프로 떠났다.

켈로나에서 애드먼튼까지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17시간, 애드먼튼 공항에서 4시간을 대기하고 국내선으로 1시간 30분을 날아야 하는 긴 여정이다.   

  

세상 바깥의 도시.


아직 시월 중순밖에 되지 않았는데 언제 눈이 그리 많이 내렸는지 이미 무릎까지 쌓여있다. 꽁꽁 언 호수에도, 고만고만한 건물의 지붕들에도 눈이 가득하다. 하늘은 아직도 한참 더 남은 눈으로 가득 찬 무거운 잿빛 구름으로 자욱하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회색과 흰색, 또는 흰색과 회색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빛들만이 존재한다.

‘노란 칼’에서 그렸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상당히 몽환적인 풍경이다.

밤이 깊어지자 지구만 한 보름달이 떠오른다. 노오-랗다.

하얀 잿빛 세상에 한 가지 빛이 더 초대되었고, 그 차가운 빛은 얼음 호수를 두 동강 낼 만큼 날카로워 ‘옐로우나이프’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영하 20도, 북위 62도의 노오-란 밤은 길다.

      

오로라 특공대는 오로라를 기다리며 긴 밤을 보냈다.

세상 저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건물을 한 채 빌려 잠복하며 오로라를 기다렸다. 밖에서 기다리기엔 달빛이 너무 날카로웠기 때문에 방 안에 숨어서 보드카와 맥주를 홀짝이며 기다렸다.      

우리는 카드놀이를 하기도 했는데, 진 사람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오로라가 나왔는지를 체크하는 것이 벌칙이었다. 나는 UNO에 꽤 능했기 때문에 거의 나가지 않았고 서툴었던 료코는 거의 매번 나갔다.  

   

세 밤을 보냈지만 오로라 특공대는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 구름은 너무 두꺼웠고 달빛은 너무 밝았기 때문에 오로라가 등장했다 한들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날 밤에는 차를 렌트해 미세한 빛조차 존재 않는 교외로 나가서 오로라를 기다리기도 했는데, 그때 어쩌면 미세한 초록빛의 움직임을 본 것도 같다.      

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니 우리가 무엇을 보았는가 하는 것은 더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오로라를 기다린다.’는 사실 하나가, 우리 생에 다시 올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날들을 만들어냈으니까.

다 함께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을, 일생에서 단 한 번도 마주해 본 적이 없는 그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사실 하나가, 정말로 그러했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늘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언제 나타날지도 알지 못한다면, 결국에 산다는 것은 어떻게 기다리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가능한 한 많이 즐겁고 싶다.

                      

 에스트라공 :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 가면 안 되지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리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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