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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섭 Sep 07. 2015

예쁜 아가씨도, 크고 작은 거북이도, 별도

멕시코시티에서 버스로 24시간을 꼬박 이동하여 태평양 연안의 작은 시골마을 꼴로라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

‘파라다이스’


그런 풍경이었다. '낙원’이나 ‘천국’보다는 어쩐지 ‘파라다이스’-스러운 풍경.

해변의 해먹에 걸누워 끝없는 태평양을 바라보며 철석철석 파도 소리를 듣고 있자니, 한나절의 불편했던 버스 이동은 물론이거니와 그간 고단했던 여행의, 지난 생의 피로마저도 모두 풀리는 것 같았다.


멸종 위기에 처한 바다거북을 지키기 위하여 이곳에 모였다.  

거북이 보호 활동은 거북이들이 활동하는 밤 10시부터 새벽 2시에 주로 하기 때문에 하루의 대부분은 자원봉사자들과 소일거리를 작당하며 보냈다.


캠프로부터 걸어서 30분, 히치하이킹으로는 2~3분 걸리는 마을에 가서 실없이 배회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데낄라를 얻어 마셨고, 마을에 하나뿐인 야채가게에서 식재료를 구입하여 국적불명의 요리를 해 먹었다.


마을에 있는 작은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도 하였고, 코코넛 껍질로 목걸이를 만들기도, 바나나 잎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주말에는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 놀기도 했고, 봉사활동을 하며 사귄 현지 친구의 코코넛 농장과 파파야 농장에 놀러 가서 코코넛과 파파야를 수십 통 대학살 하기도 했다.


더는 할 게 없어서 우리는 모래사장에서 달리기 시합과 푸시업 시합 따위를 했다.

그래도 시간은 남아돌았고, 해먹에 가만히 누워 바닷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별을 헤아리기도 했는데, 별을 헤아리다가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별똥별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끝이 나지 않는 건 매한가지였다.


끝없이 펼쳐진 꼴로라 해변에서의 하루는 태평양 저편 끝의 수평선만큼이나 길었고, 그곳의 검주황빛 노을만큼이나 황홀했다.

지역 주민들과는 같은 언어로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틈틈이 스페인어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 잘 기억해 뒀다가 주민들과 함께 일을 할 때 공부한 말을 써먹었다.

그래 봐야 “Chicas bonitas"(예쁜 아가씨들), ”La Tortuga muy grande"(큰 거북이) ”Hay Muchas estrellas en el cielo"(하늘에 별이 참 많다.)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그곳엔 정말이지 예쁜 아가씨도, 크고 작은 거북이도, 별도 참 많았다.

거북이의 알을 수거하고, 땅에 알을 묻고, 부화한 새끼 거북이들을 무사히 바다로 보내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늦은 밤 해변으로 올라온 산란기의 어미 거북은 뒷발로 땅을 파서 80~120개의 알을 낳고 흙으로 덮는데, 우리는 70cm 정도 깊이의 흙을 손으로 파고 그 알들을 수거한다. 거북이 알을 식용으로 사용하려는 무리로부터, 또 야생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알을 보호하여 생존율을 높이기 위함이다. 통계를 통해 거북이 보호를 좀 더 체계적으로 하기 위하여 알을 낳기 위해 해변으로 올라온 거북이의 종류와 몸의 길이와 산란하는 시간대, 날씨 상태 등을 기록하는 것도 우리의 임무다. 수거한 알은 캠프 내에 있는 부화장에 자연 상태와 비슷한 깊이인 70cm 정도의 깊이로 묻는다.


묻은 지 50일 정도가 지나면 그 깊이를 뚫고 새끼 거북이가 올라온다. 새끼손톱만 한 새끼 거북이의 머리통들이 마구 땅바닥을 뚫고 올라온다. 우리는 땅에서 올라온 새끼 거북이들을 커다란 바구니에 모아 태평양으로 보내 주었다. 파도로부터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놓아주면 새끼 거북이들은 본능적으로 파도에 맞서 바다로 향한다. 본능이 조금 약한 녀석들도 있기 마련인데, 그런 녀석들의 방향을 바로잡아 주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다.


그렇게 바다를 향해 힘차게 걸어간 거북이 100마리 중 1마리 정도가 생존하여 수십 년이 흐른 후 알을 낳기 위해 다시 해변으로 온다고 한다.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같은 마음을 가졌기에 국적과 언어가, 성별과 연령이 천차만별임에도 십 년 지기처럼 편안했던 자원봉사자들과의 농담 따먹기, 열악한 재료를 사다가 괴상한 요리해 먹기, 해변에 누워 쏟아지는 별똥별 바라보기, 이상한 음악과 이상한 춤과 이상한 대화가 있었던 캠프파이어, 데낄라 파티….      


꿈결 같은 시간에 취해 거북이 알을 줍고 묻고 하는 하루 4시간 남짓의 작업은 귀찮은 노동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돌이켜 보니, 자연과 그 속의 작은 생명이 전해 준 감동- 해변으로 기어 올라와 눈물을 흘리며 알을 낳고 흙으로 덮어 주는 어미 거북이의 본능적 사랑과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바다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가는 새끼 거북이의 뒷모습이 말해주는 것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에 나온 지 30분이 채 안 된 새끼 거북이들이 아장아장 걸어 그 끝과 깊이를 알 수 없는 태평양 망망대해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니, 다시금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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