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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섭 Sep 15. 2015

진심을 다하여 걷다 보면

피카소의 고향 Malaga

파블로 피카소의 생가 앞 메르세드 광장에서 피카소의 어린 시절로 빙의하여 햇볕을 쬐며 머리카락을 말리다가, 볕이 너무 뜨거워 그늘에 있는 한 간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침과 점심 사이의 간식으로 감자 샐러드와 레드 와인 한잔을 주문했는데, 샐러드는 3할의 감자와 7할의 오렌지로 구성되어 있어 맛이 괴상했다. 와인을 추가로 한잔 더 하고는 피카소 미술에 들어갔다.

맑은 정신으로 작품을 마주한다면 작품에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지만, 술을  한두 잔하고 미술관에 들어간다면 화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싸구려 레드 와인 두 잔이 100년 전을 살다 간 천재와 21세기를 사는 범인 사이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혀주길 바라며 미술관에 입장했다.  

화가의 고향에 있는 화가의 미술관 치고는 규모면에서 매우 초라했으나, 대형 미술관에서 곧잘 길을 잃곤 하는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미술관이었다. 이름난 작품들은 죄다 뉴욕, 런던, 마드리드 등 세계의 대도시에 팔려 가있고, 남은 작품들이 젊은 날의 습작들과 함께 그의 고향에 연대기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새삼 ‘개성’이라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였다. 그의 그림에 그만의 개성이 나타나기까지 그가 그려온 그림들을 연대기별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에 있어 ‘개성’이라 하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이 아닌가? 진정 멋스럽게 한 세상을 살고픈 사람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그가 그의 분야에서 개성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가 그의 길을 진심을 다하여 열심히 걸었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니까.


"성실하고 난 뒤에야 천재성에 대해 논할 수 있다"

릴케는 말테의 입을 빌려 말했다.     


아흔 살이 넘도록 그림을 그린 피카소는 8만여 점의 작품을 남겼고(90년은 고작 3만 3천여 일),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개성 있는 화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하는 엘리스에게 고양이가 말한다.

 "오래 걷다 보면 말이야, 넌 분명히 도착하게 되어있어."     


온 마음을 다하여 나의 길을 걸어야겠다.

진심을 다하여 걷다 보면, 길이 나를 안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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